지난 여름 나보다 서른 살 정도 나이가 많은 사촌오빠 댁에 놀러갔다. 몇 년만에 사촌오빠와 새언니, 그리고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다 큰 조카들을 만난 느낌은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굉장히 새로웠다.

특히 새언니를 보며 그 동안 모르고 지나쳤던 것들을 생각할 수 있었다.

사촌오빠 댁이 있는 도시의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나를 마중 나온 분은 새언니다. 40대 중반의 여성, 그 분이 나에게 존대를 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초등학생일 적에도 새언니는 내게 존대를 했다는 것이 기억났다. 깍듯한 존대와 함께 정성스레 밥을 차려주시고 과일을 깎아주시면 나는 그것을 너무나도 편하게 받아먹었다. 몸이 편한 만큼 마음도 편해졌다. 새언니는 나보다 훨씬 어른이지만 별로 어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어른이었고 나는 말로만 듣고 드라마에서만 보던 ‘시누이’라는 위치에 놓여지게 된 것이다.

갑자기 ‘형부’라는 존재가 떠올랐다. 나에게는 사촌언니의 남편인 20대 후반 형부가 한 명 있다. 형부는 나에게 처음부터 반말을 했다. 그리고 나는 형부를 대할 때 ‘어른’을 대하듯 어려웠고 그렇기 때문에 형부가 있는 사촌언니 집엔 놀러 가기 꺼려졌다.

둘의 존재와 나와의 관계를 각각 비교해보며 머리가 복잡해졌지만 결론은 의외로 간단했다. 새언니에게 있어 나는 깍듯하게 대우해야 하는 ‘시댁’ 식구였고 형부에게 있어 나는 그저 ‘처가’ 식구였던 것이다.

‘새언니가 형부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데 왜??’라는 질문은 필요도 없는 상황이다. 나는 ‘오빠’의 동생이라는 이유로 새언니에게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고 ‘언니’의 동생이라는 이유로 형부를 어려워해야 한다. 손위 사람이 손아래 사람에게 말을 놓고 손아래 사람이 손위 사람을 공경해야 한다는, 소위 우리 사회에서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통하고 그렇게도 강조하는 장유유서라는 덕목도 내가 오빠라는 ‘남성’의 권력을 동생으로서 등에 업은 이상 뒤집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은 분명 우리사회 속의 성별 권력관계를 드러내 주는 단적인 예이자 핵심이다. 성별권력의 문제를 지적하는 시선이 부부나 친인척 등 가족으로 향해질 때 문제는 한층 심각해진다.

가족 내에서 그것은 더 이상 사회적으로 조건지어진 불평등한 현상으로서의 ‘모순’이 아닌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한 ‘도리’로 여겨지고 그대로 봉합돼 버린다.

또 이런 ‘봉합’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아버지와 남편의 권위에 시달리는 가부장적 가정 내 여성들을 분열시키기도 한다. 이를테면 올케가 나의 식구들 사이에서 처한 입장이 시댁에서의 나의 그것과 유사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가정 내에서 억압당하는 여성전반의 문제로 인식하고 공유하기는 어렵다. 나와 새언니와의 관계 그리고 나와 형부와의 관계. 처음부터 각각 너무도 다르게 놓여져 있던 두 사람과의 관계이지만 지금부터라도 그 차이를 조금씩 조금씩 좁혀나가야겠다. 가장 일상적인 대화와 행동부터, 그러면서도 가장 예리한 부분부터.

김남수진·ssjin2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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