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jpg

▶한지는 종이 자체로는 평면이지만 체를 어떻게 치느냐에 따라 그 두께가 결정된다. 종이를 얇게 하려면 체를 좌우로 많이 흔들고, 두껍게 하려면 체를 오래도록 가만히 두면 된다.

우리는 늘상“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하면서 우리의 전통 문화가 왜 어떻게 좋은지, 단점은 뭔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한다. 그만큼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데 소홀했다는 반증이다. 이번호부터 우리 전통 문화의 맥을 잇는 장인들을 찾아나서기로 한다. 이들의 입을 빌어 우리 문화가 갖는 진가와 정수를 제대로 알고자 함이다. 그 첫 회로 세계적으로도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는 한지의 장인, 신풍 한지마을의 안치용씨를 만났다. <편집자주>

과거 골짜기마다 맑고 깨끗한 샘 옆에는 늘 한지를 만드는 곳이 있었다. 깨끗하지 못한 물은 한지의 재질을 떨어뜨리고 수온이 높은 물은 한지의 주원료인 닥(나무)의 섬유질을 삭게 해 못쓰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한지의 양대 산맥 가운데 하나인 신풍한지 마을이 위치한 충북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 역시 물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에는 신라시대부터 사용됐다고 전해지는 여름에는 차고 겨울에는 따뜻하고 맑고 물 맛 좋은 용천수가 사시사철 솟아나고 있다. 그래서 이곳이 한지를 제조하는 데는 더없이 유리한 조건이다.

한지는 좋은 재료와 맑고 차가운 물, 그리고 숙련된 기술의 조화로 최상의 품질을 낼 수 있다. 신풍한지는 이 용천수를 작업장으로 끌어들여 선명하고 질좋은 색감의 한지를 내놓고 있다. 원료도 최고다. 전국에서 가장 품질이 좋다는 닥나무를 직접 재배해 한지의 원료로 사용하고 있다. 그것도 참닥이다. 껍질이 두텁고 양도 많이 나오는 까닭이다. 햇가지 1년생이 최고의 질을 보장한다. 제조 기법도 다르다. 현대적인 공장에서 생산되는 기계지가 범람하는 요즈음 이곳에서 나오는 한지는 오로지 재래식인 전통 수작업을 고수한다. 이렇듯 천혜의 자연조건과 100여년 전 선대부터 이어 내려온 숙련된 기술이 오늘의 은은하고 질감좋은 신풍한지를 있게 한 동인이다.

@27-3.jpg

▶종이의 제조 기술이 언제 우리 나라에 전해졌는지 확실치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고구려의 승려 담징이 610년경 영양왕 때 일본에 종이 제조 기술을 전수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 한지의 역사는 최소한 1500년에 걸친 장대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사진은 삶은 닥을 치대고 있는 모습.

한지는 숨을 쉰다. 구겼다가도 물을 뿌리면 원상태로 다시 살아난다. 그만큼 신비롭다. 게다가 한지는 찢어지기 쉬우면서도 여러 겹으로 배접해 사용하면 창도 뚫기 어려울 만큼 내구성이 좋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비단은 500년 가지만 한지는 1천년을 간다’고 했다. 우리 전통 한지의 역사는 최소한 1500년에 걸친 장대한 역사를 갖고 있다. 투박하지만 우리 민족성처럼 강인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색은 어떤가. 은은하면서도 빛깔이 곱다. 자연에서 염색의 원료를 찾은 탓이다. 신풍한지는 특히 은은하고 아름다운 다양한 색감으로 유명하다. 무려 70여가지의 색이 나온다. 신기한 것은 물의 농도를 달리함에 따라 수십가지 색이 나온다는 사실. 다만 물감은 잘 번져 염색이 여간 어렵지 않다. 신토불이만 받아들이는 한지의 특성이다.

한지의 향기는 그윽하다. 코를 마음껏 열어도 좋다. 신풍 한지 마을을 들어서면 한지 특유의 고구마를 닮은 향긋한 냄새가 진동을 하기 때문.

얇은 종이 한 장이 만들어내는 그 위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지혜로운 우리 선조들은 이 고운 한지로 많은 아름다움을 빚어냈다. 기록을 남기고, 마음을 담아 전하고, 바람을 막고, 물건을 담아 놓을 수납용기를 만들고...

한지는 고급 서예용 한지에서부터 인테리어 한지(벽지), 우리 고유의 염료를 이용한 색한지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뿐만 아니라 용도 또한 다양하다. 안치용씨 말에 따르면 한지는 그 자체가 작품이다. 여러 가지 무늬를 넣어 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떡판 위에 종이를 말리면 우리 한국 고유 전통 문양의 무늬가 있는 한지가 나온다. 책을 만들기 위한 목판 위에 종이를 말리면 과거 서책을 재현한 새로운 형태의 한지가 나온다. 종이 자체로는 평면이지만 입체적인 모양의 특수지로도 제작 가능하다. 안씨가 주력하고 있는 분야도 한지의 다양한 쓰임새다. 그 용도를 넓혀보겠다는 것이다. 종이를 꼬아 만드는 지승공예, 물에 불린 종이를 풀 반죽을 해 만든 지호공예, 색지 공예에 이르까지 이 분야에는 개발할 아이템이 넘쳐난다는 것이다.

한지의 제조과정

껍질 속을 벗겨 삶아 곱게 치댄 닥과 풀, 색을 입힌 것을 체에 쳐서 흔들면 한 장의 종이가 완성된다. 종이의 두께는 체를 어떻게 치느냐에 달려 있다. 종이를 얇게 하려면 체를 좌우로 많이 흔들고, 두껍게 하려면 체를 오래도록 가만히 두면 된다. 풀은 섬유의 엉김을 방지하는 역할을 맡는다. 100% 닥나무를 원료로 했을 때의 일이다.

닥나무는 많이 치댈수록 곱게 빻아진다. 지질이 좋은 한지는 바로 이런 세밀한 수작업의 산물이다. 지금이야 분쇄기로 갈지만 과거의 경우라면 삶은 닥나무는 방망이로 계속 두들겨야 했다. 종이를 말리는 일은 마지막 공정.

간접열로 말려야 종이가 우글우글 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과거에는 구들장 위에 황토를 발라서 그 위에 말렸다. 그러나 지금은 나무로 땐 석판 건조대에서 말린다. 흰색의 한지를 원한다면 햇볕에 말리면 그만이다.

한지는 지적·예술적 욕구가 이끌어낸 우리민족 최대의 문화 산물이다. 책을 찍기 위한 활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다라니 경문을 보유한 문화민족다운 훌륭한 자산이다. 그 맥의 중심에 신풍한지가 있다.

김경혜 기자musou21@womennews.co.kr

● 신풍한지 마을 가는 길

중부고속도로 증평IC→증편→괴산→연풍→신풍리 중부고속도로 음성IC→충주→수안보→신풍리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