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29-1.jpg
용인에 이사와 산 지 4년째다.
세월을 놓고 새삼스레 놀라워 기절초풍, 경기가 날 정도다. 어릴 때 공깃돌을 한 주머니 모아 놓고 ‘이 만큼이나’ 모았다고 뿌듯한 마음으로 있다가 열 곱절도 넘는 공깃돌을 모은 친구를 보았을 때의 기분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 만큼’이 졸지에 ‘요 만큼 밖에’로 전락하는 순간을 어떻게 설명할까. 시간을 느끼는 건 상대적이기도 하고 개인적인 편차가 워낙 크다보니 ‘억! 억!’ 소리가 절로 나온다.
학창시절 선생님께서 학생들에게 눈을 감으라고 한 뒤 1분을 느끼도록 한 일이 떠오른다. 나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자리에 가면 간혹 이 <1분 수업>을 하는데 아이들이 느끼는 1분의 시간이 천차만별이다. 15초만에 번쩍 손드는 아이부터 2분이 지나서야 슬그머니 손드는 아이까지 다양하다.
시간개념이 천양지차인 데가 바로 용인이다. 토박이와 이주민이 한데 어울려 사는 곳이니 만나면 “용인에 산 지 얼마나 됐느냐”고 서로 묻는다. 내 기준으로 보면 4년이 넘었으면 ‘4년이나’, 4년이 안됐으면 ‘4년 밖에’로 생각하는 건 당연한 지도 모른다.
그런데 때때로 이 고무줄같은 기준이 애매하다. 이주민의 경우 “얼마 안됐어요” 할 때는 대개 10∼20년의 경우고 “좀 됐어요” 할 때는 그 이상이다. “꽤 됐지요” 하면 놀라지 마시라, 최소한 아버지 때부터 이사 와서 살다가 50∼60대인 이야기 당사자가 여기서 태어난 경우를 말한다.
토박이들의 세월은 더 놀랍다.
얼마 안됐다는 말은 3∼5대, 심지어는 7대 째라면서 얼마 안됐다고 말한다. “좀 됐지요” 하면 최소한 10대 내외로 살고 있다는 말이다. 꽤 됐다고 하면 얼마나 지나야 할까. 개그콘서트에서 연변총각으로 나와 ‘한 500년쯤 묵어야’ 한다거나 ‘한 1500년쯤 묵어야’ 어찌한다며 너스레를 떠는 강성범이 떠오른다. 나중에는 ‘얼마 안됐다, 좀 됐다, 꽤 됐다’로 토박이와 원주민의 세월을 점치는 일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억!’ 소리가 절로 튀어나오는 세월을 만났다. “고려 공민왕 때부터 살았다는데 몇대 째인지 잘 몰라요” 하면서 그딴 거 알아서 뭐 하느냐는 눈총을 보냈다. 세월을 초월한 대답에 그저 기죽을 뿐이다. 공민왕(1330~1374) 때라면 언제지? 고려 때라고? 가물가물한 셈을 헤아리려니 원체 셈에는 담쌓은 내 실력으로는 어림없는 일이다. 산수 잘하는 분은 셈해 보세요.
재산도 마찬가지다. ‘얼마 없다’와 ‘좀 있다’의 차이가 운니지차라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50∼100억의 재산가도 수두룩한데 다들 얼마 없다고 한다. 200∼300억원쯤 있어야 ‘좀 있다’고 하는데 이것도 정작 당사자는 “에이, 얼마 안돼” 하며 쑥스러워한다. 심지어는 700억원쯤 있다는 말도 들었다. 이쯤 돼야 ‘꽤 있다’고 할까.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러다가 얼마 전엔 <고려공민왕>같은 말을 들었다. 어떤 이가 한 1천500억쯤 있다는데 이 재산가는 자기 재산이 실제 얼마나 있는지 자세히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말을 듣고 보면서 어디선가 많이 들은 그 ‘억, 억’ 하는 돈을 한번 구경이나 했으면 좋겠다. ‘억, 억’ 재산가 얼굴 궁금하세요? 저는 자주 보는데….
박남
http://myhome.naver.com/namf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