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창의 한계에 부딪친 서울 외곽을 신도시들이 포위해가고 있다. 서울 시민에서 신도시 주민으로 자리를 옮긴 이들, 그러나 여전히 생활권이 서울과 분리되지 못한 가족들, 이들이 살고 있는 신도시에는 고립된 도시 서울과 다르고 그렇다고 오래된 농촌 마을들과도 다른 그곳만의 특수한 경험들이 존재한다. 도시와 농촌이 맞부딪치는 문화적 충격도 있고 서울에서 신도시로 이주한 이주민들이 토착민들과 만나며 잊었던 우리들의 문화를 재발견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도시 기반시설이 미비한 신도시에 살며 ‘아, 이제는 서울특별시민이 아니라 도민이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갖게도 된다. 신도시에서 사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통해 오늘 내가 선 자리를 다시 한번 객관화시켜보고 잊었던 삶의 지혜도 발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도에 맞춘 첫 기획으로 박남 시인의 용인 이야기를 한동안 게재키로 했다. 독자들과 더불어 삶의 여유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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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에 이사와 산 지 4년째다.

세월을 놓고 새삼스레 놀라워 기절초풍, 경기가 날 정도다. 어릴 때 공깃돌을 한 주머니 모아 놓고 ‘이 만큼이나’ 모았다고 뿌듯한 마음으로 있다가 열 곱절도 넘는 공깃돌을 모은 친구를 보았을 때의 기분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 만큼’이 졸지에 ‘요 만큼 밖에’로 전락하는 순간을 어떻게 설명할까. 시간을 느끼는 건 상대적이기도 하고 개인적인 편차가 워낙 크다보니 ‘억! 억!’ 소리가 절로 나온다.

학창시절 선생님께서 학생들에게 눈을 감으라고 한 뒤 1분을 느끼도록 한 일이 떠오른다. 나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자리에 가면 간혹 이 <1분 수업>을 하는데 아이들이 느끼는 1분의 시간이 천차만별이다. 15초만에 번쩍 손드는 아이부터 2분이 지나서야 슬그머니 손드는 아이까지 다양하다.

시간개념이 천양지차인 데가 바로 용인이다. 토박이와 이주민이 한데 어울려 사는 곳이니 만나면 “용인에 산 지 얼마나 됐느냐”고 서로 묻는다. 내 기준으로 보면 4년이 넘었으면 ‘4년이나’, 4년이 안됐으면 ‘4년 밖에’로 생각하는 건 당연한 지도 모른다.

그런데 때때로 이 고무줄같은 기준이 애매하다. 이주민의 경우 “얼마 안됐어요” 할 때는 대개 10∼20년의 경우고 “좀 됐어요” 할 때는 그 이상이다. “꽤 됐지요” 하면 놀라지 마시라, 최소한 아버지 때부터 이사 와서 살다가 50∼60대인 이야기 당사자가 여기서 태어난 경우를 말한다.

토박이들의 세월은 더 놀랍다.

얼마 안됐다는 말은 3∼5대, 심지어는 7대 째라면서 얼마 안됐다고 말한다. “좀 됐지요” 하면 최소한 10대 내외로 살고 있다는 말이다. 꽤 됐다고 하면 얼마나 지나야 할까. 개그콘서트에서 연변총각으로 나와 ‘한 500년쯤 묵어야’ 한다거나 ‘한 1500년쯤 묵어야’ 어찌한다며 너스레를 떠는 강성범이 떠오른다. 나중에는 ‘얼마 안됐다, 좀 됐다, 꽤 됐다’로 토박이와 원주민의 세월을 점치는 일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억!’ 소리가 절로 튀어나오는 세월을 만났다. “고려 공민왕 때부터 살았다는데 몇대 째인지 잘 몰라요” 하면서 그딴 거 알아서 뭐 하느냐는 눈총을 보냈다. 세월을 초월한 대답에 그저 기죽을 뿐이다. 공민왕(1330~1374) 때라면 언제지? 고려 때라고? 가물가물한 셈을 헤아리려니 원체 셈에는 담쌓은 내 실력으로는 어림없는 일이다. 산수 잘하는 분은 셈해 보세요.

재산도 마찬가지다. ‘얼마 없다’와 ‘좀 있다’의 차이가 운니지차라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50∼100억의 재산가도 수두룩한데 다들 얼마 없다고 한다. 200∼300억원쯤 있어야 ‘좀 있다’고 하는데 이것도 정작 당사자는 “에이, 얼마 안돼” 하며 쑥스러워한다. 심지어는 700억원쯤 있다는 말도 들었다. 이쯤 돼야 ‘꽤 있다’고 할까.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러다가 얼마 전엔 <고려공민왕>같은 말을 들었다. 어떤 이가 한 1천500억쯤 있다는데 이 재산가는 자기 재산이 실제 얼마나 있는지 자세히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말을 듣고 보면서 어디선가 많이 들은 그 ‘억, 억’ 하는 돈을 한번 구경이나 했으면 좋겠다. ‘억, 억’ 재산가 얼굴 궁금하세요? 저는 자주 보는데….

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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