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밀> <중독> 그리고 <번지점프를 하다>

죽은 아내의 영혼이 딸의 몸에 들어간다. -<비밀>

죽은 남편의 영혼이 시동생의 몸에 들어간다. -<중독>

옛 여인의 영혼이 남자 제자의 몸에 들어간다. -<번지점프를 하다>

그리하여 그들의 운명은? 그야말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위험하지만 그래서 달콤함은 시종일관 나른하게 피어오른다.

영혼과 육체가 뒤섞이는 멜로 판타지가 익숙하게 관객들에게 다가선다. 개봉을 앞두고 있는 일본영화 <비밀>과 한국영화 <중독>, 그리고 지난해 화제가 됐던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이 모든 영화 속 영혼과 육체의 뒤섞인 판타지의 주제는 단연 ‘금지된 사랑(욕망)’이다. ‘금지된 사랑’만큼 영화적인 화두가 또 있겠는가. ‘금지된 사랑’은 이미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부터 다양한 변주를 거치며 역경을 이겨낸 사랑의 위대함을 역설하는 보편적인 소재로 등장했다. 그런데 이 세 영화에서 그리는 사랑은 조금 다르게 자극적이고 현대적이며 애매하다.

이 영화들은 금지됐을 뿐 아니라 다소 ‘난감한’ 사랑과 욕망에 관해 말한다. 남성끼리의 동성애나 아버지와 딸, 형수와 시동생간의 사랑. 이들의 사랑은 이 사회 안에서 원천적으로(?) 금지돼 있다. 원수지간인 부모나 나이 차이처럼 ‘여지가 있는, 극복해야만 하는’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윤리’라는 이름으로 체제가 전면적인 반대를 선언한 사랑이다. 그 체제는 사랑을 관장하는(?) 이성애 중심의 가족 질서다. 이 세 영화는 그 갈등의 근원을 가족질서에 두고 있으면서도 그 가족질서에 균열을 내기보다 조금은 편안하게 기대어 안주한다. 그러나 영혼이 육체로 이입되는‘판타지’를 차용해 ‘원래는 내 남편이라니까, 내 아내라니까. 내 애인이라니까’ 하면서 사람들의 편견과 몰이해를 가볍게 넘어선다. 그리고 조심스레 금지된 욕망을 읊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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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일본에서 화제를 뿌리며 관심을 모았던 영화 <비밀>은 일단 재밌다. 신비스런 스릴러 분위기의 영화 포스터와는 다르게 시종일관 유머러스하게 웃음을 자아내는 아기자기한 설정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부담스럽지 않게 영화의 호흡을 따라가게 한다. ‘난 딸에게 욕망을 느껴’라고 살짝 말을 던지는 듯 하다가 급하게 비껴나가는 이 영화는 시종일관 남성의 아슬아슬한 욕망 언저리를 맴돈다. 그래서 너무나 익숙하다.

‘아버지’와 ‘남편’으로서의 남성 욕망이 우리에게 이미 너무나 익숙한 탓에 부부같은 부녀의 모습은 친숙하기까지 하다. 오히려 이 영화의 숨은 재미는 다른 한 축으로 진행되는 딸과 엄마의 역할 바꾸기, 즉 딸의 육체를 통한 ‘엄마의 새로운 인생 찾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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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

<중독> 역시 남편의 영혼이 시동생에게 들어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은수(이미연)와 자신이 남편임을 확인시키려는 대진(이병헌)의 아슬아슬한 동거가 지속되면서 진행되는 사랑 이야기다. 이 영화는 서로가 사랑을 향해 돌진함으로써 결국 사회의 시선에 대해 ‘우리는 미치지도, 부끄럽지도 않았다’고 말하려 한다.

<번지점프를 하다>는 ‘교사와 제자’그리고 ‘남성과 남성’이라는 상황을 등에 없고 남자교사와 남학생의 사랑이야기를 풀어간다. 이 영화는 감성적으로 그들의 사랑을 그려내고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엄연히 존재하나 인정할 수 없는 욕망을 설득하는 방식은 이렇다. 죽은 옛 사랑의 영혼이 들어갔다는데 어찌 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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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지점프를 하다

영혼과 육체를 오가며 벌어지는 사랑 이야기들은 답답한 현실에 판타지라는 크림을 얹어 금지된 욕망을 효과적으로 투영한다.

‘영혼이 바뀌었는데 그럼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라고 앙증맞게 말을 건네며 금지된 사랑에 대한 욕망과 금기를 살며시 넘어서는 것이다.

리얼리티로 정면 승부하기에 이 사회의 원칙이 너무나 견고하고 단단하다는 것을 알아버린 걸까. 하지만 영화 속에서 이들의 사랑을 억압하는 사회의 시선들은 너무나 리얼하다. 영화가 보여주는 사랑을 둘러싼 주변의 억압을 통해 동시에 사회가 얼마나 치열하게 이 금지된 욕망을 혐오하는지 적나라한 현실까지 드러내는 것이다.

현실에 엄연히 존재하는 관계들을 설명하는 메타포로 차용한 ‘영혼의 전이’가 일종의 ‘치고 빠지기’처럼 안일해 보일지라도 은밀하게 풍기는 달콤한 향기가 매력적인 건 어쩔 수 없다. 안전한 알리바이 뒤에 숨어있는 금지된 욕망의 그림자를 엿보는 매력.

문이 정민 기자 knnif@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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