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보도태도·정부 에이즈 정책 인권침해 심각

“작년 12월 정기검진을 받고 HIV 감염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내가 직접 의사의 통보를 받은 것이 아니었다. 부모와 형제, 아내와 가족 그리고 직장상사까지 알고 있었는데 나만 몰랐다. 분위기가 영 이상해서 의사에게 물었더니 말해줬다. 감염됐다는 사실로도 충격이었는데 가족으로부터의 냉대와 고립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가정을 나올 수밖에 없었고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어디서도 떳떳할 수가 없고 사회로부터도 격리돼갔다. 상사에게 이 회사에서 계속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말조차 못 꺼냈다. 몸은 건강을 되찾았지만 질병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내겐 없었다. 심각한 의욕상실을 겪었다. 용기나 희망을 갖기보다는 자꾸만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됐다.”(HIV 감염인 H씨)

유엔 에이즈계획(UNAIDS)은 올해와 내년의 주제를 ‘HIV에 대한 편견과 차별’로 잡았다. 유엔 에이즈계획은 HIV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며 감염인에 대한 차별을 폐지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에이즈 예방의 효과를 가져온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이즈퇴치연맹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1985년 최초로 HIV가 발견된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HIV 감염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별로 해소되지 않고 있다. 1992년 4월 수혈로 HIV에 감염된 청년이 “차라리 내가 정신병자였다면…”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1993년엔 역시 수혈로 감염된 남성이 아내와 동반자살을 시도했고 1994년 9월과 10월엔 에이즈라고 잘못 오인해서 비관 자살한 사례가 잇달았다. 1995년 교직원이 딸과 동반 자살한 사건이 있었고 20대 여성이 재미교포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HIV에 감염돼 비관 자살하기도 했다.

에이즈퇴치연맹 측은 “1백여 명의 사람들이 에이즈로 인해 사망한 것이 아니라 자살 등으로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에이즈가 불치병이라는 생각, 성을 금기시하고 혐오하는 풍조, 문란한 성관계의 주범이라는 편견 때문에 HIV 감염인들은 불필요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지적한다. HIV 감염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건강’이 아니라 ‘신분노출’과 ‘경제력’ 순이라는 최근의 설문결과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덕형 전 보건복지부 방역과장은 “언론이 에이즈를 처음 보도할 때 HIV 감염인에 대해 선정적이고 혐오스럽게 다룬 것이 국민들의 인식에 각인됐다”고 비판한다. 김병석 한국동성애자연합 사무국장도 “미디어가 에이즈를 마치 동성애자나 매춘여성의 문제인양 매도하면서 마녀사냥에 이용했다”며 “언론은 에이즈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전달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에이즈 정책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권관우 한국에이즈퇴치연맹 사무총장은 “에이즈 예방법을 비롯한 정부의 에이즈 정책은 복지가 아닌 감시와 처벌위주”라며 “HIV 감염인의 사생활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치료기회를 확실히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에 자살이나 보복범죄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HIV 감염인들은 보건소 직원이나 병원 측에 의해 감염사실이 누설되는 경우가 다반사며 성생활을 국가적으로 통제받는다고 호소한다. 이들은 건강을 회복해도 취업할 수 없고 몸이 아파도 병원에서 의료거부를 당해 치료받지 못한다. 최근 개정된 건강보험법 시행규칙에서는 합병증의 위험이 큰 에이즈를 의료급여 365일 상한제 예외조항에서 누락시켜 감염인들의 분노를 샀다. 그런가하면 에이즈 말기환자가 의지할 쉼터나 요양원은 전무한 실정이다.

HIV 감염인 P씨는 “정부와 언론, 사회가 에이즈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호소한다. “에이즈의 전파력은 간염이나 페렴, 결핵에 비해 훨씬 약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저 만성질환을 앓는 환자일 따름입니다. 객관성을 가지고 에이즈를 하나의 질병으로만 본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조이 여울 기자 cognate@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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