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회 <독립영화, 관객을 만나다>

지난 13일∼15일까지 (사)한국독립영화협회와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공동주최로 열린 제 36회 <독립영화, 관객을 만나다> 행사가 ‘주목할만한 여성감독들’이란 주제로 눈길을 끌었다. 지난 28회에 이어 1년만에 여성독립영화감독들의 영화를 모아낸 것.

자아와 관계에 대한 세밀한 탐색 두드러져

가부장제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 여성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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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상영회에서는 서울여성영화제를 비롯, 인디포럼, 미장센단편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등 다양한 영화제를 통해 선보였던 여성 독립영화 감독들의 작품 총 10편을 한자리에 모았다. 2002년 새롭게 테이프를 끊은 신인감독들의 신작이 주를 이뤘는데 이들은 영화를 통해 주로 자아와 그를 둘러싼 세상에 대한 탐색을 다양한 색깔로 풀어냈다. 이들이 풀어놓은 이야기 속에는 속속들이 여성 화자의 시선과 경험이 묻어난다. 임신중절 수술을 받고 찾아온 친구에게 미역국 한 그릇 끓여주고픈 마음을 담은 <미역 먹는 날>, 오랫동안 짝사랑했던 ‘그’에게 인터뷰를 청해 깜찍한 다큐멘터리로 담아낸 등 소소한 일상 속에서 느꼈던 감독들의 세밀한 감수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여성의 심리를 변덕스런 날씨 변화에 맞춰 풀어낸 <날씨와 생활>도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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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감독들은 차가운 관찰자의 시선을 견지하기보다 흡사 일기처럼 자신의 내면에 천착, 주관적인 시선으로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하고 조금은 생뚱맞게 현실을 비틀기도 한다. 는 통통 튀는 감각으로 시종일관 웃음을 자아내며 자신을 둘러싼 삶의 구성요소에 대해 되짚는다. 인디 밴드의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한 상쾌한 상상력 뒤로 여성주인공은 자기 삶의 구성요소에 대한 귀여운 비꼬기를 시도한다. 가족 그리고 친구들 등 ‘자신을 구성하지만 동시에 규정하고 억압하는 것’에 대한 날카로운 천착을 유쾌하게 담아내고 있다. <手花>는 병으로 죽어가는 여성의 눈을 통해 육체 중 가장 중요하고 창의적인 사색을 유도하는 신체인 ‘손’에 대한 집요한 고찰을 시도하면서 존재감에 대한 탐색을 진행한다. 그러나 이렇듯 내면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사색은 자아도취적인 감상으로 난해하게 빠져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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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개인적 감수성과 내면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은 가부장제 현실에 대한 고찰로 이어져 짙은 주제의식을 표출하기도 한다. 여성감독들은 자아에 대한 탐색을 진행하면서 결국 자신의 존재 지반인 한국사회의 현실에 맞닥뜨리게 된다. 자신들이 안고 있는 딜레마, 존재에 대한 의문은 자연히 자신이 발 딛고 있는 ‘가부장제’에 닿게 되는 것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갈증>은 ‘인어공주’ 이야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다. “인어공주 동화 속의 억압된 성과 미학에 매료돼 이 미학을 가부장제 권위로 팽배한 현실의 틀 안에서 풀어내면 어떨까 생각했다”는 감독의 연출의도처럼 이 영화는 아름다움의 상징인 마론 인형(인어공주)과 그를 동일시하는 소녀의 상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가부장제 사회 안에서의 여성의 욕망과 불안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또한 <가족 프로젝트-아버지의 집>에서 감독은 자신의 가족을 카메라로 집요하게 따라가면서 혈연으로 맺어졌어도 말 한마디 쉽게 못하는 낯선 가족의 현주소, 그리고 삭제된 엄마의 욕망과 역사를 용감히 드러내며 가족관계를 왜곡시키는 남성성, 한국의 가부장제에 대한 면밀한 고찰을 수행한다. 감독 개인의 가족사는 다큐멘터리 형식과 결합돼 ‘여성의 눈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지극히 문제적인 영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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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이렇듯 여성 독립영화 감독들은 자아의 탐색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변방의 시선을 다양하고 깊이있게 풀어내면서 실험과 대안의 실마리를 당당하게 제시하고 있다. 남성이 주류였던 영화판에 카메라를 들고 뛰어든 이들 여성감독들의 새로운 시선과 힘찬 약진이 기대된다.

문이 정민 기자 knnif@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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