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숙/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의 모임 회원

추석이나 설날과 같은 명절이 다가오면 각종 기혼여성들의 동호회, 커뮤니티에는 ‘어떻게 하면 명절을 무사히 치르나’하는 이야기들로 넘쳐난다. 먼 지방까지 갓난아이를 데리고 갔다와야 하는 고단함, 맏며느리로 제사준비를 주도해야 한다는 경제적·심리적 부담, 처음 결혼해서 일도 일이지만 낯선 시댁에 가서 적응하는 게 더 어렵다는 새내기주부 등 20대 주부에서 50대 주부까지 각종 하소연과 명절 잘 지내는 나름의 노하우(?)를 공개하며 다양한 얘기들을 쏟아놓는다.

언젠가 기혼여성을 대상으로 ‘명절이 싫은 이유’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1위가 남녀차별적인 분위기이고 2위가 음식장만 등 신체적 고단함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추측과 달리 기혼여성들은 음식장만 자체의 고달픔보다 며느리라서, 혹은 여성이라서 당하는 가정내 위치, 차별적 분위기가 더 싫다는 거다.

우리나라 기혼여성의 가정내 위치는 호주제의 부가입적(민법826조)으로 나타나듯 시가의 가족일원이며 친정의 출가외인이다. 그러나 시가에서는 권리는 없고 책임과 의무만 많은 ‘법적가족’일 뿐이고, 친정에서는 아무리 평소에 잘해도 제사를 지낼 수 없고 부모를 모시기 어려운, 그래서 아들보다는 무언가 허전하고 미덥지 못한 ‘그래봤자 남의 집 식구’일 수밖에 없다.

사실 이런 명절은 이제 여성들만의 짐이 아니다. 이런 여성들의 불만이 부부간의 말다툼으로 번져 명절마다 싸운다는 부부들이 많아지고 있고 그래서 이젠 남성들도 명절이 부담스럽다는 얘기가 나오는 걸 보면 남성에게도 역시 달갑지 않은 것이다.

이제 명절은 어떻게든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여성은 물론 남성들조차)이 명절문화가 바뀌길 바라면서도 쉽지 않은 것은 철옹성처럼 우리의 밑바탕에 자리잡고 있는 가부장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달라져야 할 가부장적 문화인 성씨·족보·제사·명절문화 등을 직간접적으로 법에다 명시한 것이 가족법의 근간을 이루는 호주제이다. 이러한 잘못된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 계속 시어머니와 며느리, 올케와 시누이, 며느리들간의 화합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남성이 아내와 시어머니 사이에서, 올케와 시누이 사이에서 ‘집안 내 여자들끼리의 화합’을 강조하는 것이 전혀 설득력없는 소리로 들리는 것은 여성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을 너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진정한 해결은 당장 눈앞의 일을 대신 해줄 또 다른 여성(시어머니, 며느리, 동서 등)이 아니라 양성평등한 가족문화를 실현하는 것이다. 호주제와 같은 여성차별적인 가족법을 폐지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abortion pill abortion pill abortion pill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