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은 전쟁을 반대하는 여성연대(WAW)가 주최하는 ‘소수자의 시선으로 북한 만나기’ 프로그램을 통해 국내 거주하고 있는 북한여성들의 진솔한 목소리를 통해 가깝고도 먼 ‘북한여성의 삶’을 조명·연재한다. <편집자주>

이명숙씨 - 평안북도 신의주 출생. 43세로 1977년부터 평양서 7년간 군복무를 했으며 1978년에 입당했다. 내년 1월이면 한국에 온 지 5년이 된다.

북한여군의 수는 5만5천여명으로 1990년대 전체 병력의 2% 수준에서 현재 5%까지 차지하는 것으로 우리 군은 추정하고 있다. 한국여군의 수가 7천여명(간호병을 제외한 전투병은 2천 여명에 불과)으로 전체 병력의 0.3% 수준인 것에 비하면 상당한 비율이다. 특히 우리의 경우 공군·해군이 여성에게 개방된 지 불과 몇 년이며 그 수도 손가락으로 꼽는 반면 북한여군은 공군의 13.6%를 차지하고 있다. 여성장군도 1992년도부터 배출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의무병 제도인가 = 군복무는 의무지만 아무나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가기 싫다고 가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군입대를 하면 당원이 되거나 직장을 얻는 것 등이 유리하기 때문에 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문건이 좋아야 하고 신체검사를 통과해야 한다. 내 경우는 고등중학교 다닐 때 뽑혔다. 학교마다 명수가 정해져 내려온다. 나는 의사가 되고자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입대는 생각도 못해봤다. 그렇지만 원하지 않는다고 거절할 수는 없다. 뽑히면 가야 한다.

◇ 군복무 기간은 = 만 17세에 군에 들어와 남군은 10년, 여군은 7년 복무한다. 나는 1977년 9월에 조선인민군 반항공사령부(공군)에 입대해 1983년 11월에 제대했고 1978년에 입당했다. 남한에선 사관과 하사관이 다르게 입대하는데 북한에선 모두 전사(하사관)에서 출발한다. 배치될 때는 뇌물도 받지만 승진에 있어선 능력 위주라고 말할 수 있다. 제 역할 못하면서 군에서 대접받을 수는 없다.

◇ 사병의 일과 = 아침 5시에 기상해서 30분간 침구를 정돈하고 아침체조를 하고 아침검사(무기·주머니 검사에서 위생검사까지)를 한다. 식사 전에는 항상 대렬훈련을 하는데 평보와 정보(발을 90도까지 올려서 걷는다) 걷기를 한다. 훈련에서 합격한 순으로 식당에 들여보내고 식당에선 마지막 대원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같이 앉아서 먹는다.

오전에 2시간 전술·대렬·군사 등을 배우는 상학이 있고 점심 먹고 낮잠을 40분 정도 잘 수 있게 한다. 그 시간에 주로 세탁을 하거나 잠깐 산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기도 한다. 오후에도 역시 상학이 있는데 실전훈련 위주로 한다. 야간훈련은 1개 소대씩 하는데 24시간 전투준비상태다.

◇ 가장 힘든 훈련은 = 점심 먹기 20분전쯤 강행군을 하는데 장비를 모두 갖추고 십리길을 달려오는 것이다. 그게 얼마나 힘드냐면 목구멍에서 쇠비린내가 날 정도다. 어린 전사들은 울기도 하고 바지에 일보는 사람도 있다. 소대마다 평가가 따르고 낙오자가 있으면 안되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의 배낭을 대신 메주기도 한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백리행군을 한다. 백리를 달리는 건데 가스지대를 방독면 쓰고 기어가기도 하고 자면서 걷는 법도 배운다. 여군들은 눈 위에서 자고 해서 냉이 심하고 아이를 못 낳는 경우도 있다.

◇ 휴식시간이나 오락시간은 = 저녁 식사가 끝나면 오락회를 열어 노래나 개인기를 선보인다. TV도 볼 수 있다. 북한군에선 각자 한가지 이상의 악기를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내 경우는 아코디언을 배웠다. 매달 일요일에 생일 맞은 사람들에게 특식을 차려준다. 오리고기나 떡 등이다. 잠들기 전 30분 자유시간에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고 동료들과 대화도 나눈다. 취침준비하고 총화를 거쳐 점검이 끝나 “누워” 명령이 떨어지면 10분간은 아무 소리도 안 내고 누워있어야 한다. 때로 새벽에 “폭풍!”(비상) 소리가 들리면 벼락같이 기상해야 한다.

◇ 남군과 여군대우가 다른가 = 여군이라고 특별히 대우해주는 건 없다. 남군들은 겨울에 팬티 바람으로 얼음물에 들어갔다 나오지만 여군은 그런 훈련은 제외한다. 남녀 군 부대가 따로 있고 여군이 배치되지 못하는 분야는 별로 없지만 전선 잇기, 화학부대 등은 피한다. 여군들에게 크림과 분 같은 화장품도 지급된다. 군복은 남군과 상의는 같고 하의는 다르다. 행사 때는 치마를 입는다. 군복은 사회에서 굉장한 인기다. 몰래 남의 옷을 훔쳐다 시장에 내다 파는 경우도 있다. 70년대만 해도 생리대가 없어서 면가제천을 접어 비누칠해서 비닐에 넣어 햇볕에 널어서 사용했다. 80년도 들어와 일본에서 위생대 기술이 넘어왔는데 군인부터 제공했다.

◇ 구타와 폭력문제는 없나 = 군에서 구타는 흔하지 않다. 물론 맞아도 자기가 잘못한 거니까 아무 말 못할 거다. 잘못이 없는데 맞는 경우는 없다. 남한에서 <신고합시다> 보면 사관이 하사관에게 윽박지르고 욕하고 하는데 보기 민망했다. 북한에선 ‘관병일치’라고 병사나 군관이나 차이주지 말아야 한다는 의식이 있다. 군관도 하전사 생활을 거쳤기 때문에 전사들의 심정을 안다. 훈련에만 몰두시키면 안되고 언니같은 심정으로 대하라고 한다. 나는 군 생활하면서 한 번도 소리질러 본 적이 없다. 공적인 용어를 쓰고 규정대로만 하면 언성 높일 필요가 전혀 없다. 말을 잘 들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 복무기간 중에 제대하는 경우는 = 생활제대와 감정제대가 있다. 감정제대는 군의소에서 몸이 아프거나 부상을 당해 군생활을 할 수 없다고 판정됐을 때 시키는 것이다. 생활제대는 낙후병들이나 불량한 병사들에 대한 제대조치인데 나중에 입당할 수도 없고 불이익을 받게 된다.

◇ 휴가와 연애·결혼은 = 군복무기간 중에는 사회와의 접근이 금지된다. 한 번도 집에 못 갔다. 포상휴가가 1년에 한번 정도 주어지는데 그건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군관이 되면 남자의 경우(23살) 15일 휴가를 준다. 그게 결혼기간이다. 15일 안에 여자를 데려와 부대주변에서 살림을 차려야 한다. 반면 여군은 군복무기간 중에 결혼 못한다. 연애편지를 쓰거나 받아도 비판받았다. 80년대 후반부터는 아마 연애나 결혼에 대해 개방됐을 것이다.(한국여군도 오랜 기간 여군의 결혼을 금했고 1988년까지 결혼에 따르는 출산을 허용하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군에 들어와 사회와 접촉이 없다보니 사춘기라는 게 뭔지 모른다. 남군들 중엔 밤에 산에 숨었다가 지나가는 여자를 강간하는 경우도 있다.

◇ 성폭력에 대한 조치는 = 북한엔 강간죄라는 게 따로 없다. 당하는 여자만 피해보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저녁이 되면 여자들이 거리를 잘 못다닌다. 배급 끊기고 나선 시장에서 돈없는 여자들에게 남자가 접근해서 국수 사주겠다고 먹이고 마음대로 한다. 상관 부인을 건드렸으면 상황이 다르겠지만 강간했다고 처벌받는 예 못봤다. 남한에서는 성폭력에 대한 정책이 잘 돼있는 것 같다. 북한에선 아내구타도 세고 셌다.

정리=조이 여울 기자 cognate@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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