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애/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상담위원 ilove@lawhome.or.kr

이은주씨(여, 41세, 가명)는 15년 전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인과 결혼했으나 남편의 여자문제로 이혼했다. 이혼 당시 딸(11세)에 대한 친권자로 지정된 이씨는 딸을 데리고 귀국해 살다가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주는 남자를 만나 재혼을 하게 됐다.

일본사람과 이혼한 데다 아이까지 있는 여자의 재혼은 험난하기만 했으나 이씨가 아무리 노력해도 넘을 수 없는 벽은 바로 딸의 이름 문제였다. 일본식 성을 써야 하는 딸은 학교생활에서 또 친구관계에서 심하게 위축됐고, 한국사람들과 같은 성을 쓰기를 간절히 바랬다.

딸의 성 문제로 고통받던 이씨는 가능한 방법을 찾다가 딸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도록 했으며 딸이 갖게 될 한국 성을 재혼한 남편의 성과 본으로 쓸 수 있게 해달라는 내용의 ‘성 및 본 창설 허가’ 신청을 법원에 냈다. 성에 집착하는 한국의 현실에서 새 아버지와 성이 다름으로 인해 딸이 또다시 받게 될 상처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판사는 이씨가 신청한 **김씨의 사용을 거절하고 남편의 본이 아닌 한양김씨로 쓰도록 했다. 이씨의 딸은 **김씨의 피가 섞이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김씨 종친회에서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도 있었다고 한다.

이씨는 한양김씨라도 감지덕지해야 하는 것인지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다. 한양김씨는 성 및 본 창설 허가시 가장 흔하게 인정되는 것으로 자신의 딸이 고아라는 뜻이나 다름없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친어머니가 있는데도 왜 그래야 하는지, 또 본이라는 것이 호적에 반드시 기재돼야 하는지 등이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앞으로 결혼으로 아이가 받게 될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배려한다면 구태여 새 아버지와 다르게 본을 지정해 줄 수는 없지 않겠냐는 것이다(딸의 성과 본이 결정되면 남편에게 아이를 입양시킬 예정이었다).

일본사람과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이혼할 수밖에 없었던 결과가 이렇게 큰 고통과 수고를 요할 줄 몰랐다고 자조하는 이씨는 제발 딸이 **김씨를 쓸 수 있게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이씨의 사례는 호적에 본을 기재하도록 하고 성과 본의 변경이 불가능하도록 한 호주제의 폐단에 기인한 것이다. 세계화니 국가경쟁력 제고니 하는 말들을 흔히 하지만 성과 본에 집착하고 그 때문에 고통받는 국민들이 존재하는 한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나 국가경쟁력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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