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사는 장점 중 하나는 세계 각국의 소식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에 걸쳐 식민지를 개척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영국은 국제뉴스를 상세히 보도하는 편이다. 특히 인도는 영국에게 특별한 존재다.

영국의 일간 더타임즈(The Times)는 지난 8월 31일자에서 인도 법원이 히즈라(양성으로 태어난 사람)로는 최초로 시장에 당선된 캄라 잔(Kamla Jaan, 52)씨를 상대로 한 사임청원에 대해 원고측의 손을 들어줬다는 내용을 기사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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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여성에게 할당한 시장직에 남성 부적절 판결

유넉인 캄라 잔 시장, ‘나는 여성’이라 항변

피고인 캄라 잔은 ‘여성’의 성을 선택하고 평생 여장을 하고 사는 인물로 3년 전 인도 중부 캇니(Katni)시 시장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대승했다. 캄라 잔 같은 이들을 영어로 ‘유넉(eunuch: 남성 성기에 손상을 가지고 태어나 후에 거세한 남성)’이라 하고 인도에서는 이들을 가리킬 때 ‘여성(she)’으로 간주한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그들만의 공동주택에서 함께 살고 결혼식이나 여러 행사에서 춤을 추거나 공연을 하고 받는 돈으로 살아간다. 인도에는 현재 50만명의 유넉이 있는데 이들은 대부분 유아기나 청소년기에 거세당한다.

캄라 잔은 지난 3년간 시장으로서 많은 인기를 얻었다. 하수시설 정비, 지역 버스정류장 개선 등 오랫동안 연기돼온 공공사업을 직접 진두지휘하며 성공적으로 진행시켰다. 그러나 잔 시장은 독선적인 경영스타일을 보였고 시장 자문위원회를 공식적으로 비난하다가 결국 위원회를 해산시키기에 이르렀다.

이런 가운데 그를 상대로 한 시장직 사임청원이 법원으로 올라갔다. 인도 마다하야 프라데쉬(Madhya Pradesh) 지방법원은 1993년 당시 헌법개정안의 할당제에 따라 캇니시 시장직은 원래 여성에게 지정된 자리인데 캄라 잔은 완전한 여성이 아닌 남성이므로 처음부터 시장으로 선출되지 않았어야 하고 3년 전 선거는 무효라고 판결했다. 이런 결정에 대해 캄라 잔은 자신은 날 때부터 남성 성기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으므로 남성으로 간주될 수 없다며 항변했다.

잔 시장은 인도사회에서 유넉이 정치에 참여하는 데 분수령이 된 존재다. 처음에 유권자들은 현 정치에 만연한 부패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유넉에게 투표했다. 그리고 이들은 가족이 없으므로 권력을 이용해 사적으로 재물을 모으지 않고 유권자에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정치를 할 것이라 여겨졌다. 또 워낙 소외된 존재들이라 사회를 주저없이 비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게다가 캄라 잔이 기존 정치인들과 다르게 실제로 시민을 위한 정치를 하자 정치지도자로서 유넉의 존재가 유권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캄라 잔 이후로 다른 유넉들도 지방선거에 출마해 마다하야 프라데쉬 주에서 큰 승리를 이끌어 냈다. 이를 바탕으로 유넉들은 지난해부터 중앙정치에 진출, 전국정당으로 발돋움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 신생정당은 성(性, gender)에 상관없이 깨끗한 정치를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

캄라 잔의 이야기는 여러 가지 부패게이트가 끊이지 않는 한국정치를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동시에 성이 불분명한 유넉들이 정치에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는 인도사회의 분위기를 한국사회와 비교하게도 된다. 뿐만 아니라 종전의 남성중심 정치와 차별화된 깨끗한 정치를 표방하는 대부분의 여성정치가와 후보자에게도 좋은 선례가 될 것 같다.

이주영 영국통신원/에섹스 대학 사회학 박사과정chrisljy@hotma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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