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도 선택이다
가족도 선택이다
  • 조혜원 기자
  • 승인 2005.05.12 16:29
  • 수정 2005-05-12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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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족, 핵가족 이어 가족형태도 다양화시대
가족이 변하고 있다. 형태가 급격히 바뀌고 있고 개념은 그보다 더디지만 많이 달라져 가고 있다. 초·중·고교 교과서가 그리는 가족의 형태는 여전히 전통적 모습에 머물러 있지만 결혼한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집단만이 정상적인 가족으로 여겨지는 시대는 지나고 있다. 현실에서는 이미 무자녀·재혼·입양·동성애 가족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가까이에 존재한다. 이혼/재혼율·독신 가구의 숫자도 매년 빠르게 증가한다. 가족의 의미를 재조명할 필요가 대두된다.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가족의 여러 형태를 통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가족상, 그 밑그림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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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의 급격한 하락과 이혼율의 증가. 한국 가족사회의 현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97년 1.54명이었던 출산율이 2001년 1.3명으로 떨어졌고 이혼율은 97년 9만1천159쌍에서 2001년에는 13만5천14쌍으로 50%나 늘었다. 1인 가구주의 확대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 2000년에는 1995년보다 35% 증가한 2천224가구로 집계돼 같은 해 총 가구수의 16%를 차지했다. 그뿐 아니라 총 가구 증가율보다 3배 가량 높은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 통계는 전통적인 가족이 변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무너지는 전통적 가족 개념



우리에게 가족이란 무엇인가. 최근 논의되고 있는 것처럼 가족은 그야말로 붕괴되고 해체되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현재 붕괴되는 것이 과연 가족 그 자체인지, 아니면 이데올로기화한 가족의 개념인지는 모호하다. 전통적인 혈연 위주의 가족 개념에는 큰 변화가 오고 있음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혈연가족과의 연대감이 완전히 부정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가족 내부에서 정서적 안정과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집밖에서 공허함을 채울 무언가를 찾아 떠도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 그 반증이다.



그렇다면 가족의 역할은 무언가. 다시금 그 근본적인 물음으로 되돌아갈 수 밖에 없다.



크리스토퍼 라쉬는 ‘이전 시대의 가족은 자녀들에게 현존 가치를 초월하는, 모성애의 풍요한 이미지로 응축된 하나의 세계관을 제공했다’고 설명, 전통적 가족은 너무도 자연스럽고 도덕적인 것으로 인식돼 왔다고 주장한다.



가족에 대한 가치를 따져보는 것은 곧 그 사회체제를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마르크스의 이념적 파트너인 엥겔스는 개인이 재산을 소유하면서부터 오늘날의 가족 형태가 등장하게 됐다는 가족사회학의 이론을 그의 저서 ‘가족의 기원’에서 전개했다. 엥겔스와 그의 이론을 따르는 제자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할 혈통이 확실한 아이를 낳기 위해 일부일처제가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호주제는 이런 엥겔스의 주장을 입증할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된다. 엥겔스를 매우 꺼려하는 한국사회가 호주제를 통해 이 주장을 가장 확실하게 뒷받침한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가족 이상주의가 만든 부작용



학술적으로는 무엇으로 규정되든 대다수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족이란 어떤 전형성을 지닌 개념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런 가족에 대한 전통적 관념이 만들어내는 부정적인 효과의 무게는 만만찮다.



우리 사회가 출산, 양육, 자녀교육 등은 가족 안에서, 그것도 2세대 이상으로 구성되는 혈연가족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 가장 정상적이라고 여기는 가족 이상주의의 지배를 받고 있는 까닭이다. 이같은 신앙에 가까운 믿음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바깥에 놓여있는 개인들을 뭔가 부족한 사람으로 믿게끔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따라서 한부모 가족의 자녀나 입양된 아이들을 비롯한 여타의 가족 형태 속 개인들은 불완전한 틀 안의 존재로 바라보는 부정적 시각을 강요한다.



영국의 사회학자 미셀 바렛은 ‘가족 이상주의의 영향으로 유아원이나 탁아소, 기숙사, 고아원, 양로원 등은 상실과 박탈의 상을 그려내고 정상적 가족생활이 불가능할 때만 갈 수 있는 최후의 수단으로 여긴다’고 분석했다.



변화하는 가족의 의미



이런 전통적인 가족의 틀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혈연 공동체로서의 가족형태를 벗어난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늘어나고 있다. 재혼·입양·동성애·무자녀·각종 가족 공동체·동거·한부모·독신자 가족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가족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혈연중심주의에 도전장을 내민다. 부모 양쪽이 모두 공존하는 2세대 이상의 혈연이 이루어내는 소위 완전한 형태의 가족은 더 이상 가족의 표준 모델이 될 수 없을 만큼 그 비율이 떨어지고 있다. 대신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증가하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이처럼 늘어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경희대에서 가족학을 강의하는 유영주 교수는 “외형적인 모양으로 건강한 가족을 평가하는 시대가 지나고 행복의 감정이 가족을 평가하는 중요한 가치로 떠오르면서 나타난 결과”라며 “여성들의 의식 발달 수준과도 밀접한 이 현상은 전통적인 개념으로서 가족의 해체를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이화여대 사회학과 함인희 교수도 “과거에는 가족을 누구나 거쳐야 하는 정해진 과정으로 생각했다면 지금은 개인의 선택이 많이 좌우하고 있다”며 “이혼율이나 독신자 수가 늘어나는 것은 기존 가족 형태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일찍이 수용한 서구에서는 이혼율이 더 이상 증가세를 멈추고 일정한 비율로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가족 제도에 있어 과도기를 겪고 있는 한국의 경우 이혼율과 독신자 수는 당분간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무자녀 가족의 증가는 자아실현 욕구가 강한 현대인의 경향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육아에 대한 경제적인 부담도 무자녀 가정이 늘어나는 데 한 몫하고 있다. 유영주 교수는 “자발적으로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하는 경향은 곧 부계 혈연중심 주의가 약화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독신 역시 개인이 선택한 결혼의 한 대안으로 받아들인다면 독신자들을 미혼이라 일컬어 가족의 틀에서 누락된 부류로 여기는 분위기에도 변화가 생길 것이다. 함인희 교수는 “미국은 독신의 범주에 결혼 전·이혼·사별의 경우를 모두 포함시켜 독신을 인간이 언젠가는 거쳐야 할 가족의 형태로 보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독신의 개념을 좀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유럽의 경우 동성애 부부가 법적으로 인정되는 사례가 늘고 있어 동성애 가족에 대한 사회적 수용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 동성애 가족도 하나의 선택 유형으로 바라본다면 가족의 범주에 넣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순결 이데올로기의 영향으로 비난의 화살을 피하지 못하고 있는 동거 가족도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 동거 가족에 대한 부정적 사회 인식이 변한다면 독립된 두 개인이 어울려 살아가는 형태로서 가족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동거 커플에게 결혼한 부부와 똑같은 법적 제도 적용을 허용한 프랑스의 사례가 말해준다. 함인희 교수는 “동거는 결혼과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사는 것”이라며 “동거를 선택한 각자는 서로 독립적인 인격체라는 인식을 통해 상대에 대한 배려의 폭을 넓힐 수 있고 나아가 자아실현을 위해 어떻게 함께 할 것인가를 터득해 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녀 양육을 공적 영역으로



가족의 의미가 변하고 있는 만큼 그에 따르는 사회의 역할 변화도 요구된다. 함인희 교수는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사회의 허용 폭이 커진 것은 사실이나 제도적 변화가 뒷받침될 때 그들이 현실적으로 수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가족의 고유 기능으로 치부돼왔던 양육·교육·가사 등을 사회가 끌어안을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병자나 노약자의 보호도 고려해야 할 문제이다. 그만큼 가족이 처한 근본적인 문제를 치유할 수 있는 역할은 사회의 몫으로 남아있다는 얘기다. 유영주 교수의 지적처럼 “가족을 사적인 영역으로 남겨두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때다.



조혜원 기자nancal@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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