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 칼날은 어디를 향하는가

MBC 일일드라마 <인어아가씨>를 주제로 미디어 비평을 해보고 싶어 몇 번이고 텔레비전 앞에 연습장과 볼펜을 들고 앉았다. 하지만 작심 3초. 객관적인 눈으로 분석을 해야 했던 나는 그만 입 벌리고 침을 흘리는 열혈 시청자가 돼 있었다. 이렇게 매혹적인 드라마 <인어아가씨>는 요즘 여성들이 모이는 곳에 빠지지 않는 수다 주제라고 한다.

아내의 후배와 바람이 나 가족들을 내팽개치고 떠난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게 세련된 방법으로 복수를 하는 딸. 남성의 외도를 ‘벌받을 일’로 확언하는 이 드라마는 지금까지 남성의 외도를 취미생활 정도로 합리화했던 다른 드라마들과 차별화를 선언한다. 그리고 바지가랑이 붙잡고 “제발 우리를 버리지 마세요”라며 애원하는 모습이 아닌 전문직 여성으로 성공한 딸의 지능적인 모습의 복수장면은 보는 여성들로 하여금 통쾌함을 주고 있다.

하지만 이 <인어아가씨>에도 벗어나지 못한 우리나라 드라마로서의 통념, 가부장제의 논리가 있으니… 이제 이를 짚어보고자 한다. 먼저 주인공 아리영의 복수의 대상은 ‘아버지’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혼은 어느 가정에나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아리영의 아버지는 생계능력조차 없는 가족을 팽개쳐 버리고 돌아섰다. 소 닭 보듯이 하면서 말이다. 이 과정 속에서 아리영의 어머니는 동생을 낳았고 태어난 동생은 태아 때 어머니의 충격으로 인해 자폐아가 됐고 한술 더 떠 사고로 사망했다. 그리고 이 충격에 어머니는 시력을 잃고 말았다.(정말 복수하고 싶을 수밖에 없는 극적인 상황 구성이다)

마음속에 칼을 품고 작가로 성공을 한 아리영은 아버지의 새 부인(심수정)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를 쓴다. 심수정은 우아한 역만을 하는 탤런트. 그녀에게 뽀글파마 가발을 씌우고 몸뻬를 입히며 그녀의 이미지와 자존심에 손상을 입힌다. 또 아버지의 딸의 애인을 뺏으려 작전 중이다. 하지만 어디에도 아버지에게 직격탄을 쏜 흔적은 없다. 그저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만나 독설로 충격을 준 정도. 나쁜 짓을 한 장본인은 아버지인데 아버지를 제외한 주변 가족이 처절한 복수의 대상이 된 것은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전형적인 가부장제의 논리를 덧씌운 것을 의미한다.

또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대사 속에 나타나는 성차별적 구성이다. 아리영 엄마의 친구 딸, 아들인 마마린과 마마준은 항상 티격태격 싸우지만 동생인 딸의 캐릭터는 까분다, 대든다, 염치없다 등 단어로 표현된다. 반면 마마준은 회계사로서 곰살맞은 성격을 가지고 이상적인 남성으로 그려진다. 게다가 마마준은 항상 마마린에게 “기지배가” “뭐가 되려고” 등의 말로 대화를 시작한다. 여동생은 천둥 벌거숭이, 오빠는 사회모범생. 작가가 너무 편애한다는 생각이 든다.

또 심수정의 딸 예령은 언론고시를 통과한 유능한 직장인이지만 아버지와 같은 부서에 있어 왠지 ‘사다리’라는 느낌을 주는 반면 신문사 사주의 아들인 그녀 애인 주황은 조건으로 보면 더 큰 ‘사다리’지만 ‘이 달의 기자상’을 타는 유능한 기자로 나온다. 그들이 있는 배경도 예령은 단란주점, 커피숍이 대부분이며 공과 사를 구분 못하고 엄마에게 유리한 기사를 쓰는 엉터리 기자로 나오지만 주황은 경찰서 등 취재지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미디어의 영향은 상상은 초월한다. 드라마 안의 문제의식과 캐릭터들은 알게 모르게 우리 뇌리 속에 박혀 고정화된다. 그래서 성인지적 관점의 드라마와 미디어는 중요하다. <인어아가씨>가 앞으로 어떻게 결론이 날지 지켜봐야겠지만 보는 이들과 만드는 이들에게 있어 양성평등적 시각은 다시금 챙겨야 할 필수요건으로 생각된다.

한황주연 객원기자 ihup-h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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