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숙/ 이화여대 국제 대학원 교수 choks@ewha.ac.kr

내가 몇 해 전 인천대학교에 처음 임용되자 학생들은 새로 부임하는 교수의 신상을 파악하느라 안테나를 세웠다. 강사시절 연구회에서 안면이 있는 숙대 박사과정의 한 학생이 나에 대한 정보를 이렇게 주었다고 한다. “원칙주의자이지만 융통성이 있다.”

나는 이 말에서 ‘그러나’라는 접속사가 잘못 사용됐다고 생각한다. 원칙주의자만이 융통성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원칙만 지킬 수 있다면 그 외의 것은 뭐든지 타협을 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나의 평소 철학은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주는데 산 사람 소원인들 못 들어 주랴’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원칙은 무엇이고 타협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나는 어떤 현상을 볼 때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구분하는 습관이 있다. 본질은 절대로 타협해서는 안되지만 비본질적인 것은 얼마든지 타협을 하는 것이 원칙주의자가 취할 바라고 생각한다.

올 봄 우리 건물의 로비에서 졸업생들을 불러 홈커밍 행사의 일환으로 저녁뷔페를 할 생각이었다. 작년까지는 로비사용을 허용했지만 올해부터는 소음이나 보행자의 편의를 위해 불허한다는 소문이 들렸다. 총무처장에게 전화해서 우리는 토요일 오후에 행사를 하므로 타인에게 피해줄 것이 없으니 장소사용을 허가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총무처장은 매우 곤란해하면서도 그렇게 하라고 허락했다. 그런데 공문을 들고 장소허가를 신청하러 간 조교가 되돌아 왔다. 누구도 그 장소를 쓸 수 없는 것이 원칙으로 정해졌다며 담당직원이 거절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담당직원에게 전화로 부탁을 했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하도 말이 많아 누구는 해주고 누구는 안해 줄 수가 없어서 모두 불허하는 것으로 원칙을 정했어요.” “원칙은 학교가 구성원들에게 봉사를 잘 하겠다는 것이지요. 장소를 허가하느냐 불허하느냐는 그 원칙에 맞도록 때에 따라 정하는 결정이고요. 상황에 따라 매번 내려야 하는 결정을 내리지 않고 무조건 안 해주는 것이 원칙이라고 주장하면 정작 지켜야 할 원칙인 ‘서비스 정신’은 훼손되는 것 아닌가요?” 직원은 나의 설교에 더 기분이 나빠져서 무조건 안 된다고 했다. 결국 총무처장에게 이미 허가를 받았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고 직원은 왜 진작 그런 이야기를 안 해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냐며 더 기분 나빠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결재라인을 건너 뛰어 허락을 받은 것은 나의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원의 자존심과 권한을 인정해줘야 직원도 직업의식을 가지고 서비스를 잘 할텐데....

이런 풍경은 우리 관공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불허하는 것, 그것은 전형적인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이다. 하지만 서비스 정신이 조금만 있다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는 가능한 한 허용을 하는 편을 택할 것이다. 문제는 이런 결정을 할 권한을 아예 하위직 공무원에게는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잘못 권한을 줬다가 임의적으로 사용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사전에 예방하겠다는 의도에서다. 그러니 복지부동이라는 말이 나오고 공무원은 무조건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공무원의 업무수칙을 대민봉사가 아니라 무조건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데에 두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미국에 유학 갔을 때 가장 처음 느꼈던 문화적 충격은 하위직 공무원이나 직원들의 재량권이 엄청나게 크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저렇게 설명하면 안되는 일이 없을 정도로 융통성이 많았다. 박사과정을 시작한 지 1년만에 임신한 사실을 알았다. 아기가 태어나면 어떻게 될지 몰라 미리 종합시험을 마치고 싶었다. 하지만 규정에 따르면 10과목을 마쳐야 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 두 학기동안 모두 6과목 밖에 듣지 못했으니 시험자격을 얻으려면 1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교수들이 시험이 모두 끝나는 학기에 10과목을 들으면 되니까 지금부터 시험을 치르기 시작하라고 허락했다. 3학기 째에 세 과목을 들으며 시험을 치르기 시작하여 4학기 째에 마지막 한 과목을 들으며 시험을 모두 마쳤다. 10과목을 모두 들으려면 학기말인 5월까지 기다려야 했지만 나는 아기의 출생예정일인 3월 말 전에 모든 것을 마치기 위해 3월 초순에 논문초안 발표까지 당겨서 하는 바람에 최단시간 내에 박사후보가 될 수 있었다. 아침잠이 많은 나의 편의를 고려해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보던 기존 시험제도에서 벗어나 24시간 집에 가져가서 보는 시험제도를 새로 만들기도 했다.

한국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미국 박사가 한국 박사보다 결코 질이 떨어진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학생의 실력이 박사후보가 될 만한 것이냐에 있는 것이지 열 과목을 모두 들었느냐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믿었기에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하는 나를 방해하는 교수나 직원은 없었다. 오로지 출산 전에 모든 것을 끝내려는 나의 갑작스런 스케줄에 맞춰서 교수들이 바쁘게 회의를 잡고 시험문제를 내느라 함께 법석을 떨었다.

이처럼 원칙에 충실한 사람은 원칙을 어기지 않는 한 웬만한 규정에서는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다. 원칙에 기초한 자신의 결정을 신뢰하므로 불공정 시비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민봉사를 극대화하려면 원칙을 분명히 천명한 다음에 하위직 공무원에게 재량권을 줘야 한다. 권한이 오용될 것이 두려워 무조건 제한만 한다면 정작 고통받는 사람은 국민이다. 그 대신 권한을 오·남용했는지의 여부는 사후에 철저히 따져서 분명한 책임을 물으면 된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면 영원히 장맛은 볼 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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