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적이던 해변이 차츰 쓸쓸해지고, 길가에 변색된 나뭇잎들이 뒹구는 때…

그래서 가을은 특별하다.

똑같은 것도 달라 보이게 하는 힘,

잊혀졌던 나를 마주 볼 수 있게 하는 힘.

가을은 그런 신비함을 가졌다.

-앙드레 가뇽의 앨범 <가을의 꿈>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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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마가 할퀴고 간 흔적은 참으로 처참했다. 그래서 올 가을은 더욱 쓸쓸하기만 하다. 그래도 하늘은 한없이 높아만 가고 아침 저녁으로 바람은 선득선득하기만 하다. 어느새 가을은 어김없이 우리 앞에 기적처럼 다가온 것이다. 피아노 선율만큼 가을을 닮은 것도 없다. 올 가을 음악계는 참으로 풍성하다. 유키 구라모토를 비롯한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9월을 기점으로 내한공연을 펼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선사하는 선율에 맞춰 차분한 가을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내한 공연에 나선 월드스타들

오는 11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내한 공연을 가질 예정인 컨템퍼러리 재즈 밴드 포플레이(Fourplay)의 새 음반 가 눈길을 끈다. 건반 주자 밥 제임스와 기타리스트 래리 칼튼이 이끄는 스무드 재즈의 최고봉인 프로젝트 그룹. ‘스무드 재즈’란 이름 그대로 초보자도 듣기 편한 재즈를 말한다. 지난 94년 3번째 앨범 <불로장생약(Elixir)>을 끝으로 기타리스트 리 릿나워가 떠난 뒤 한동안 활동을 접었다가 98년 래리 칼튼의 영입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피아노와 기타가 본격적인, 그러나 전혀 부담 없는 즉흥연주를 펼친다. 동명 타이틀곡인 에서 어쿠스틱 피아노와 기타 사운드로 설탕처럼 감미로운 연주를 펼치는 포플레이의 새로운 면모를 만날 수 있다. (문의 02-515-4676)

국내 음반 판매 100만장 기록을 앞두고 있는 유키 구라모토는 이름이 낯설지 않을 만큼 국내에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9월 30일부터 10월 3일까지 서울, 부산 등 순회공연(문의 1588-1555)을 앞두고 있는 그의 최근 음반은 7집 <여행의 나날들>. 꾸밈없이 명료하고 투명하게 울리는 피아노 선율은 그가 세계 각지를 여행한 감흥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상상력을 자극시킨다. 첫 번째 트랙 은 넓어진 음역으로 여행에의 동경을 자극한다.

한국에 머물렀을 때 작곡한 은 바람 휘날리는 제주도의 풍광을 떠올리게 하는 스산한 연주곡.

클래식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첫 크로스오버 넘버를 발표한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의 새 앨범 <프로포즈>는 조용히 가을을 명상하고픈 이에게 권한다. 카치니의 <아베마리아> 테오도라키스 <기차는 8시에 떠나네> 등 선율미 있는 성악곡 위주로 선곡했다. 백미는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 중 아리아인 <울게 하소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떨리는 음색이나 신영옥의 고혹적인 목소리를 기억하는 이라면 흡족해할 만한 연주다. 미끄러지듯 우는 바이올린의 음색이 가을 낙엽 분위기와 닮았다. 김씨의 바이올린 독주회는 오는 29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문의 02-720-6633)에서 열린다.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첼리스트 안너 빌스마와 그가 이끄는 세계 최고의 고음악 전문 체임버 앙상블 라르키부델리의 내한공연(문의 02-599-5743)을 앞두고 안너 빌스마의 연주를 다시 들어보는 것도 별미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다닐 샤프란의 연주 앨범이 기품있는 울림이 특징이라면 빌스마의 바하는 단아하다.

지난 2000년 가을 안정감와 유머스런 무대 매너를 함께 보여줬던 내한 공연을 기억하는 매니아들이 아직도 많다. 클래식 음악계에서 드물게 원전악기와 현대 악기를 두루 잘 다루는 연주자인 빌스마가 1992년 발표한 바흐 무반주 첼로모음곡 전곡 음반은 그해 프랑스 <르 몽드 드 라 뮈지크(음악세계)>지가 선정하는 올해의 최고음반상 등 유럽의 권위있는 음반상을 3개나 휩쓴 명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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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알리는 새음반

앙드레 가뇽의 새 음반 는 이글거리던 여름 낮의 태양에 지친 이들을 서늘하게 식혀줄 곡들이 눈에 띈다. 가뇽은 지난 97년 소니 레이블로 발매된 국내 1집 <모놀로그> 의 선풍적 인기로 대중성을 확보해 왔지만 국내에는 그간 뉴 에이지 스타일의 음악만 소개돼 왔다.

오프닝 은 파격적인 보사노바풍으로 탄탄한 리듬감이 돋보인다. 이어지는 곡 역시 가벼운 프렌치 팝스타일에 삼바리듬을 덧붙인 경쾌한 사운드가 매력적이다. 차가운 겨울풍 멜로디가 신선한 <겨울을 꿈꾸다>로 눈보라치는 계절을 미리 감상해도 좋을 듯.

록밴드 라르크 앙 시엘(L’Arc_en_Ciel)의 보컬리스트 출신 하이드의 영어 앨범 도 J-록 팬들에겐 희소식. 지난해 11월 발표한 솔로 앨범으로 한국에서도 발매됐다. 기발표된 싱글 등이 수록돼 있다. 탐미적인 가사와 더불어 더듬는 듯한 몽환적인 보컬이 돋보인다. 이미 홍콩, 대만, 싱가폴 등지에서 프로모션 투어를 마친 하이드는 오는 10월 한국도 방문할 예정이다.

부드러운 성악곡을 듣고 싶다면 지금은 30대에 접어든 보이 소프라노 알레드 존스의 천상의 목소리가 어울린다. 14세 때 녹음된 중 헨델의 오페라 세르세의 <나무 그늘 아래서>는 영화 <편지> <흑수선>에도 삽입된 대중적인 작품이다. 티끌 한 점 없이 완벽한 음색은 건조하지 않으면서 매끄럽게 듣는 이를 흡입한다. 그 외 멘델스존의 <노래의 날개 위에>, 구노의 <아베 마리아> 등 친숙한 아리아 위주로 꾸며졌다.

이박 재연 기자revival@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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