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진적 이슈 내걸고 주변부에서 손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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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8월4일 개최된 여성해방연대발기인대회. <자료제공·여성해방연대>

“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정치세력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기존 여성단체들은 낙선운동을 하거나 정책을 제안하는 식의 소극적인 형태에만 머물렀다. 그런 방식은 효과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성후보, 여성주의적 후보를 만들어 내야한다.”

올해 8월 4일 발기인대회를 개최한 여성해방연대는 여성운동이 ‘정치성’을 띠어야 하며 적극적으로 선거에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해방연대에는 기존 여성단체 실무자들이 다수 회원으로 소속돼 있다. 시니옥분 여성해방연대 준비위원장은 “위계적인 조직체계와 ‘큰 사안’ 중심 활동에 회의를 느낀 실무자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이 하고싶은 운동을 벌이고자 모인 것”이라고 분석한다. 여성해방연대는 장애인이동권, 성폭력, 성적소수자 차별 등에 연대활동을 벌이고 있다.

성적소수자 단체이자 여성운동단체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가고 있는 한국여성성적소수자 인권운동모임 ‘끼리끼리’는 작년 추계여성학술대회의 ‘레즈비언페미니즘’ 논란을 통해 “한국 여성학회는 소수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또 여성·상담단체에 ‘동성애 바로알기’ 강의를 통해 “단체 실무자들부터 성적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깰 것”을 주문하고 있다.

한편 끼리끼리가 작년부터 레즈비언 단체와 공동으로 전개하고 있는 ‘동성간 성폭력 근절 캠페인’은 기존 성폭력 담론에서 한 발 나아가 다양한 권력과 계급이슈를 포함한 새로운 인권개념을 대두시키고 있다.

여성 독자노조로 출범한 서울여성노동조합은 작년 한 해 여러 가지 급진적인 이슈를 공론화했다. “실업자도 노조에 가입할 권리 있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해 2심까지 승소판결을 받아냈고 “파출부·보모에게도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하라”며 가사노동의 유급화 문제에 접근하기도 했다. 또 작년 뜨거운 감자였던 모성보호관련법 개정논란에서 ‘생리휴가’를 타협안으로 내어선 안 된다고 주장하며 최하위층 여성노동자들의 권리를 대변하고자 하는 단체의 성격을 드러냈다.

“더 이상 장애인 단체에서 구색맞추기 식으로 존재하지 않겠다”며 1998년 여성자치조직으로 만들어진 ‘장애여성공감’의 회원들은 ‘여성장애인’이 아닌 ‘장애여성’이라고 스스로를 칭한다. 장애인이라는 범주 안에 여성/남성으로 분리하는 것을 반대하며 여성의 범주 속에서 장애에 대한 문제를 풀겠다는 것이다.

장애여성공감이 올 한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이슈는 ‘장애여성의 성’이다. 배복주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장애여성의 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우리를 대상화하는 것 뿐”이라며 “스스로의 성적억압과 욕망, 사회의 시선에 대한 느낌 등을 그대로 이야기하고 이를 토대로 우리의 목소리를 내겠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해 회원들 사이에선 이문열의 소설 <아가>와 최근 개봉한 영화 <오아시스>를 둘러싸고 열띤 논쟁이 진행중이다.

2001년 9월 미국의 대 아프간 전쟁을 앞두고 평화를 원하는 여성단체, 여성웹진, 여성언론, 여성개인들이 모여 발족한 전쟁을 반대하는 여성연대 ‘WAW’(Women Against War)는 “평화담론에 더 이상 모성은 없다”며 어머니의 관점이 아닌 전쟁의 최대피해자 여성과 소수자의 관점에서 평화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최근 WAW는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 속에서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WAW는 북한인권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소위 우익진영이나 반대로 북한인권에 대해 침묵하는 좌익진영을 함께 비판한다. WAW는 앞으로 북한사람들의 입을 통해 다양한 삶과 현실에 접근해보는 ‘소수자의 시선으로 북한 만나기’를 진행해 “어떤 정치적 이념에도 휘둘리지 않고 평화와 인권에 대한 관점을 바로 세울 수 있는 계기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들 비주류 여성단체들은 조직의 운영과 운동방식에 있어서도 기존 여성단체들과의 차이를 확연히 나타내고 있다. 대표가 없거나 있더라도 다른 모든 실무자들과 동등한 의사결정권을 갖는 ‘원탁식’ 조직운영을 하며 다른 단위와 활동을 함께 함에 있어서도 ‘연합’체가 아닌 ‘수평적 연대’의 원칙을 고수한다. 또한 끼리끼리와 WAW 등의 단체는 정부로부터 자유롭게 활동하기 위해 프로젝트 기금을 받기보다는 국제여성·평화재단으로부터 후원 받는 것으로 활동비용을 충당하고 있다.

2001년 명동에서 3·8여성대회를 개최한 ‘차이가 힘이 되는 여성연대’는 “중심을 향해있는 여성운동의 방향을 주변으로 돌리겠다”고 공언해 주목받았다. 여성연대에 합류한 단위들은 장애여성공감, 끼리끼리, 서울여성노조, 군사주의와 매매춘에 반대하는 여성주의자 연대 CAMP와 대학여성모임 등으로 3·8대회에선 각 단위의 이슈들을 한데 묶기보다는 오히려 다양화시키는 쪽을 택했다.

당시 3·8여성대회에 참가했던 장애여성 한 명은 “기존 여성단체와의 행사에서 우리의 존재는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았다.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고 말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조이 여울 기자 cognate@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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