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장애인들이 모성권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여성장애인 인권운동이 주로 성폭력, 교육과 취업에서의 차별에 초점을 맞췄다면 올해는 소외돼왔던 모성권, 여성장애인들의 당당한 권리를 찾는데 주력할 예정이라고 여성장애인단체들은 밝혔다.

우선 첫 사업으로 국내에서는 처음인 여성장애인 모성권 관련 조사연구가 진행 중이다. 지난 2월 한국여성장애인연합과 한국여성연구소가 공동으로 ‘여성장애인의 임신, 출산, 육아에 관한 조사’연구진을 구성 8월 말까지 전국적인 조사를 실시한다.

설문조사에 이어 9월부터는 양적조사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장애유형별 사례조사를 별도로 실시한다. 이런 일련의 조사 작업들을 바탕으로 10월 말에는 여성장애인의 모성권 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정책 제안과 대안 제시를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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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앞서 오는 9월 6일과 7일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리는 제2회 여성장애인대회에서도 여성장애인의 모성권과 관련한 다양한 문화축제 및 주제강연이 마련된다. 여성장애인의 임신, 출산, 육아 관련 사진전과 걸개그림전을 비롯해 이 행사에 참석할 캐나다 여성장애인인권단체 실무자들의 선진국 장애인 모성권 지원 정책 소개도 있을 예정이다.

주제토의에서는 여성장애인들이 실제로 임신과 출산, 육아 경험을 나누며 정보교환 및 대안 을 함께 생각해 보는 자리를 마련한다.

여성장애인의 모성권 어떤 수준인가

최근 여성계의 가장 큰 소득이었던 모성보호 관련 조항이 개정됐지만 이런 일련의 제도들이 장애를 가진 여성들에게는 거리가 먼 얘기다.

‘자신의 몸도 불편한데 아이까지 낳아’ ‘장애인이 아이를 낳을 수 있나’ 등 각종 편견과 오해들로 여성장애인과 ‘모성권’은 그동안 성립될 수 없는 등식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그동안 여성장애인과 관련 단체 실무자, 전문가 대상으로 실시된 워크숍을 통해서 나온 사례들을 보면 기혼 여성장애인들의 고민과 갈등이 그대로 드러난다.

한 지체 장애 여성은 특별한 사유없이 단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의사에게 낙태를 권유받았다.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는 한 중증 여성장애인은 출산하기 전 병원에 간 적이 한번 밖에 없다고 한다.

1년 전에 결혼한 한 척수 장애 여성은 “아이를 갖고 싶지만 용기가 안나고 낳아서 키울 일이 막막하다”고 털어놨다.

뇌병변장애가 있는 한 여성은 “저런 장애를 갖고도 아이를 낳다니 누구를 고생시키려고”라는 주변의 얘기를 자주 들어야 했다.

많은 장애인 여성들은 비장애 여성과 달리 출산을 거부할 권리와 출산을 할 권리 이 두가지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 사회적 편견과 싸워야 한다고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오상진 간사는 전한다.

오상진 간사 역시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고 있어 아이 갖는 것을 포기한 상태지만 아직도 부부간의 완전한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오 간사는 “일단 내 몸의 소중함을 더 느끼는 여성 장애인들은 그리 많지 않다”고 말했다.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비장애 여성들도 장애를 입을 수 있는데 장애여성들은 안전을 위해 제왕절개를 하거나 무리하게 출산하다 장애 정도가 심해지거나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더욱이 앞의 사례들처럼 여성 장애인들의 임신과 출산과정에 특별히 신경을 써주는 산부인과 의사들도 참아보기 힘든 상황이라고 서울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장명숙 소장은 말했다. 더구나 현재 각 복지관에서 개별적으로 장애 여성 산모 도우미를 두고 있지만 서울장애인복지관이나 북부장애인복지관을 제외하면 수요에 비해 공급이 달리는 형편이다. 임시방편으로 가사도우미가 산모도우미를 병행하는 경우도 있다.

이예자 한국여성장애인연합 대표는 “그동안 장애인정책조차도 남성중심이었다. 항상 여성장애인정책을 얘기하면 장애인정책이 잘 만들어져 있는데 무슨 여성을 구별하느냐는 답변만 듣는다. 가령 자동차세 면제라도 대부분 남자들이 이 혜택을 본다. 수혜자들의 성별만 구분해 봐도 얼마나 편향적인지 알 수 있다. 여성장애인단체에 대한 예산지원도 다른 단체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인 것만 봐도 이를 증명한다”고 역설했다.

이 대표는 “이번 기회에 여성장애인 문제를 단순히 복지서비스 제공 차원이 아니라 인권에 초점을 맞춘 다양한 정책이 마련되도록 촉구하겠다”고 다짐했다.

박정 희경 기자 chkyung@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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