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숙/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요즘 교실이 무너졌다고 아우성이다. 아이들이 교사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고사하고 부모가 학교에 쳐들어와 학생들 앞에서 교사를 폭행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무너진 것은 중·고등학교 교실만이 아니다. 초등학교와 대학교도 선생의 권위가 무너진 것은 마찬가지다. 지금 무너지는 것이 어디 교육뿐인가. 전통적인 공동체 전체가 무너지고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전통적인 공동체를 떠받치고 있던 권위가 무너지는 것이다.

전통사회의 권위는 지위와 연령에서 비롯됐다. 위계적인 사회에서 지위에는 권력이 따르고 권력은 강제력을 지니고 있다. 비록 아랫사람이 자발적으로 윗사람을 존중하지 않더라도 인사권이며 의사결정권을 모두 권력자가 가지고 있었기에 아랫사람은 알아서 기는 것으로 윗사람의 권위를 인정해야 했다. 그리고 이 지위라는 것이 연공서열이 중요한 사회에서는 연령과 비례한다. 과거에 선생님은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사회적인 권위를 인정받았다. 게다가 학생이 나이가 많은 교사에게 대드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세상이 많이 변했다. 지난주에 말했듯이 요즘은 무조건 기존 권위에 대들면 인기를 얻는다. 이는 그 만큼 기존 권위가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기득권 세력이 실력이나 정당한 조건에 의해 그 지위를 확보한 것이 아니라 연령이나 인맥에 의해 권력을 갖게 되었다는 불신감이 기존 권위에 반항하는 사람을 영웅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당장 권위가 무너진 교육현장을 어떻게 추스릴 것인가. 답은 원점에서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교사 자격증을 가졌다는 것이 학생들에게는 어떤 권위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비록 학생이 버릇없이 대든다고 해도 이런 식의 말은 하지 말자. “어디라고 눈 똑바로 뜨고 쳐다봐!”

학생도 하나의 인격체이니 학생을 존중함으로써 나도 학생으로부터 존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권위를 쌓아가는 지름길이다. 이는 교사도 학생과 사안마다 갈등을 해결함으로써 권위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명령과 통제에 의존했던 전통적인 공동체는 하루 빨리 해체돼야 한다.

“옛날이 참 좋았지. 요즘 애들은 버르장머리가 없단 말이야.” 이런 망상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문제해결도 앞당길 수 있다. 사회 구성원이 동등한 관계에서 사안마다 정치력과 협상력을 발휘해 민주적인 합의를 이뤄낼 때 새로운 공동체문화가 형성될 것이다. 지난 월드컵 기간에 붉은 악마가 보여준 성숙한 시민의식이나 최근 사이버 공간에서 성별, 연령, 학벌, 지위를 초월해서 결성되고 있는 공동체가 바로 새로운 공동체다.

그러나 인기영합적인 처방이 교사의 권위를 올리는데 결코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가령 모든 학생에게 학점을 잘 주거나 매일 학생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사주는 교사가 인기는 있을지 몰라도 존경을 받지는 못한다. 원칙을 지키지 않는 정치인의 인기가 거품으로 변해 표로 연결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나는 첫 교직을 시립인천대학교에서 시작했다. 인천대학교는 그 말썽 많던 이사장에 맞서 교수와 학생이 몇 년간의 목숨 건 투쟁 끝에 마침내 시립화를 이뤄냈고 나는 시립대 1기 교수로 채용되는 행운을 얻었다. 학교에 가보니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각목을 휘두르며 시위에 앞장섰던 학생 대표들은 거의 신성한 권력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학생들이 동맹하면 맘에 안 드는 교수의 강의를 폐강시키는 것 정도는 누워서 떡 먹기였다. 학생회 간부들은 당연히 수업을 빼먹었지만 학점을 받는 데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내 수업에도 학생회 간부들이 들어오지 않았다. 계속 안들어오면 F를 주겠다고 협박을 했더니 마지못해 지각을 했다. 나는 지각한 학생회 간부를 문 앞에 세워 놓고 한참이나 야단을 쳤다. 사실 나보다 약한 사람에게는 설득과 충고를 할 뿐 야단치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교육철학이었지만 학생회 간부는 내게 더 이상 약자로 보이지 않았다. 극복할 권력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학생들의 눈이 왕방울만해졌다. ‘저 여교수가 간이 부었지 어떻게 감히 학생회 임원을 학생들 앞에서 망신을 준단 말이야.’

나는 틈만 나면 학생회간부들의 거만함과 모순을 지적했다. 복학생이 찾아와서 수업들을 시간이 없으니 학점을 달라고 협박을 할 때에는 30분쯤 그렇게 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다가 급기야는 물건을 집어던지기 전에 나가라고 호통을 쳤다. 한 학기가 지나고 2학기에는 내 과목 하나가 폐강 위기에 처했다.

“교수가 하는 일이 연구하고 강의인데 폐강이 되면 연구만 할 수 있어 얼마나 좋으니....” 조금도 폐강을 두려워하지 않는 나를 보며 학생들이 다시 돌아왔다. 차츰 침묵했던 합리적인 다수의 학생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결국 나는 학생회 간부들과도 큰 문제가 없었지만 학점을 거저 얻으려고 했던 복학생에게는 사은회에서 ‘정말로 존경하는 교수님’이라는 소리까지 듣게 됐다. 나는 이 일을 계기로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더욱 절실히 깨달았다.

무너진 교실을 살리기 위해 계성여고 박의용 교사가 프리첼에 ‘초중등협상’ 카페(www.freechal.com/negoeducation)를 열었다. 박 교사의 열성에 감복해 나는 이 카페에 참여하는 교사들의 협상교육과 연구를 도와주기로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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