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좋아' 또다시 제한상영가 판정에 문화계 허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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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세 박치규 할아버지와 71세 이순예 할머니의 사랑을 그린 영화 <죽어도 좋아>(감독 박진표)가 8월 27일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의 재심 결과 지난 7월 23일 초심 때와 마찬가지로 제한상영가 등급을 판정 받았다. 재심에서도 15명의 영상물등급위원 중 5명의 위원만이 18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내려 또다시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죽어도 좋아>는 현재 극장 및 다른 영상물로 유통이 불가능하다. 영화진흥법상 초심을 받은 7월 23일로부터 3개월이 지난 10월말에나 등급분류 심의 신청이 가능한 상태다.

이미 초심에서 이 영화의 제한상영가 등급 판정에 대해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 ‘영화인회의’, ‘젊은 영화 비평 집단’, ‘한국교직원노동조합’ 등 많은 사회·문화 단체에서는 영등위의 판단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며 영화의 이야기 구조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내는 창작에 대한 폭력행위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이후 영화계와 문화계는 다양한 토론회와 상영회를 통해 <죽어도 좋아>의 제한상영가 판정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며 재심판정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동국대 학보사에서 주최한 상영 및 토론회에서는 설문조사를 통해 참가인원 중 84%가 ‘18세 이상 관람가’를 찬성, 이 영화의 제한상영가 판단이 불합리함을 입증하기도 했다. 그러나 영등위 측은 이번 재심에서도 “영화 <죽어도 좋아> 하나로 지금까지 지켜왔던 원칙이 무너질 수는 없다”며 오럴섹스 및 성기 노출장면을 문제삼았다.

성기중심적 성문화가 낳은 제한상영가 판정

지난 초심 판정에서부터 이번 재심 판정에 이르기까지 논란이 된 영화 <죽어도 좋아>에 대해 여성계는 공식입장을 표명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8월 23일 한국여성단체연합 주최로 열린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영상물 토론회>에서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조정하 정책실장은 “성기노출의 여부에만 초점을 맞추는 심의기준이 달라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으며 방송영상산업진흥원 영상산업연구센타 하윤금 책임연구원은 “표현의 자유가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것은 경계해야 하지만 심의에 대한 이론적인 접근이나 기준이 모호한 상태에서 <죽어도 좋아>가 불러일으킨 공론화 작업은 중요하다”며 방송과 영상물 심의 기준의 문제점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영화의 심의기준의 핵심은 단연 성행위 유무다. 정확히 말하면 성행위 중 ‘성기가 노출되느냐 아니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런 심의기준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기중심적 성문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예다. 우리 사회의 성기 중심적 성문화는 성폭력의 규정에 있어서도 명백히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경우 강간은 ‘정조에 관한 법률’로 정의돼 있는데 그 정의에 따르면 ‘강간은 여성의 동의없이 여성의 성기에 남성의 성기를 삽입하는 특정 성접근 행위’로 규정된다. 따라서 강간은 성기의 삽입여부로 결정된다. 남성의 성기 대신 다른 이물질을 삽입하는 경우나 여성의 질 대신 구강이나 항문에 삽입하는 경우는 강간이 아닌 추행에 해당한다. 따라서 피해자 여성은 가해자를 강간이라는 이름으로 처벌하길 원한다면 강간을 당할 때 “반드시 질에, 그리고 반드시 성기를 삽입해 주세요”라고 말해야 하는 웃지 못할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논란이 불거지며 각계의 입장이 엇갈렸는데 “젊은 남녀의 성행위와 노인들의 성행위를 다루는 데 있어 형평성의 차원에서 <죽어도 좋아>의 제한상영등급은 타당하다”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최태연 운영위원의 입장과 재심에서 밝힌 영등위의 입장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에로영화 제작자 측 입장과 맥락이 닿아있다. 에로영화 제작자 측에서는 ‘젊은 남녀의 성행위는 음란이고 노인들의 성행위는 예술이냐’는 반론을 들이밀며 형평성의 문제를 거론한 바 있다. 결국 ‘성기를 누구는 보여줄 수 있고 누구는 안되냐’는 논리나 그에 근거해 형평성과 원칙을 말하는 논리나 성기 중심적인 사고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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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반사회적인가

가부장제의 기반은 이성애 제도다. 기존의 가족질서를 유지, 공고화하는 이성애 제도는 생식이 가능한 젊은 남녀간의 사랑만을 정상으로 인정한다. 그럼으로써 안락한(?) 가족질서 안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남성의 성을 붙여 남성 라인을 안전하게 지켜나가며 가부장제를 존속시킨다. 따라서 가부장제를 지탱하는 강고한 이성애 제도를 벗어나는 성행위는 체제를 위협하는 불순한 것이며 따라서 변태이며 반사회적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호모포비아(동성애공포증)나 동성애자에 대한 인권유린의 실태 속에 쉽게 드러난다.

지난 8월 8일 문화개혁시민연대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 영화인회의 유창서 사무국장은 “<죽어도 좋아> 제한상영등급 판정의 문제는 예술이냐 상업이냐, 상영관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문제는 애매한 제한등급 상영기준이다. 이런 제한등급상영 판정 기준에 준용할 수 있는 기준으로 비디오물에 대한 등급보류 기준이 있는데 이는 인체의 특정부분을 확대 클로즈업하거나 매춘, 근간, 수간, 동성애 등을 다룬 것이 속한다”라고 지적했는데 이 지적이 함의하는 바는 크다. 이 기준에 의하면 제한등급상영 조치를 받은 <죽어도 좋아>에서 문제가 된 ‘노인 섹스’는 이성애 제도가 부정하는 동성애의 연장선에서 ‘반사회적’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영등위 영화등급분류 소위원회가 노인의 성과 사랑을 다룬 영화 <죽어도 좋아>에 대해 “일반국민의 정서에 악영향을 미치거나 반사회적인 내용”에 해당하는 영화이므로 제한상영관에서 상영돼야 한다고 결정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체제가 인정한 안전한 섹스, 필요하고 허용된 섹스의 범위를 벗어난 성행위인 노인 섹스는 이성애중심 사회 속에서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짓일 뿐이다. 따라서 <죽어도 좋아>의 7분간의 성행위 장면은 영화적 맥락과 상관없이 불필요한 장면으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이다. 영등위 측은 “극중 7분간 묘사된 노인의 섹스 신 가운데 구강 성교 대목과 성기 노출 장면 등이 국내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이댔으며 대부분 제한등급상영을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굳이 그렇게 적나라하게 노인들의 섹스 장면을 넣을 필요가 있었느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이번 재심 판정은 또 한번 영화계와 문화·사회계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재심 직전까지 영등위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하던 각계각층에서는 이번 재심 판정에 대해 실망과 허탈감을 표현하면서도 이후 대응에 고심하고 있다.

<죽어도 좋아> 논란으로 불거진 검열과 예술창작 표현의 자유 그리고 포르노그라피의 문제 등 논의돼야 할 중요한 사안들이 산재해 있지만 남성중심적 성문화 속에서 나타난 영등위의 심의기준과 그를 둘러싼 논란 가운데 여전히 버티고 있는 성기 중심적 사고 역시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지점으로 남는다.

문이 정민 기자 knnif@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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