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일/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상담위원

여성부가 발표한 제2차 여성정책 기본계획에 따르면 국민의 공감대 형성을 전제로 2007년까지 호주제 폐지를 검토, 추진하겠다고 한다.

정부차원에서 호주제 폐지를 논의한 것 자체가 획기적이고 진일보한 것이라는 의견에 토를 달 생각은 없지만 호주제로 인해 고통받고 시름에 젖어 사는 여성들을 생각하면 앞으로 5년의 세월도 결코 짧은 것이 아니다. 국민 정서와 여론을 핑계로 호주제 폐지를 자꾸 늦춰서는 안된다는 안타까움과 답답함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법과 제도 그리고 법 감정과 국민정서는 서로 밀접한 연관을 맺으며 상호 작용한다. 여성의 차별과 불평등의 문제도 법적인 측면에서 볼 때 최고 상위법인 헌법을 위시해 관련 법률에서 남녀차별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고 따라서 외형적·형식적으로는 남녀의 평등이 보장돼 있다. 적어도 눈에 보이는, 명문화된 차별을 규정해 놓은 법률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몇 안되는 법률 중에서 남녀차별을 가장 핵심적·상징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게 바로 호주제다. 호주제가 민법에 그대로 존재하는 한 불평등 문제는 계속 대두될 수 밖에없다. 무엇보다도 무의식적으로 자행되는 여성 차별과 여성비하, 잘못된 사회관행과 관습, 가부장적 비민주적 사고체계의 근저에는 호주제가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그런 호주제를 법과 제도로 보장해 주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의 법 감정과 사고체계 역시 쉽사리 변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호주라는 용어와 호주제를 규정하는 법 자체가 없어져야 우리 국민들이 호주제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정부는 세계 60위권인 한국의 여성권한 척도를 30위권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여러 가지 여성정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런 여성권한 강화 정책을 차질없이 추진하기 위해서는 호주제 = 남성중심 가족제도 = 가부장적 사회 = 여성차별로 상징되는 호주제를 폐지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그래야만 여성권한 강화라는 목적을 보다 쉽게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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