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열 명 중 한 명 가정폭력에 시달려

가정폭력으로 인한 사망만 매 달 여섯명

진보적 독립언론인 ‘르 몽드 디쁠로마띠끄’의 지난 7월호에 실린 ‘가정이란 갇힌 공간 속의 여성차별적 야만성들’이란 기사는 가정폭력에 의해 여전히 희생되고 있는 프랑스 여성들의 현실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폭력남편을 떠나 지옥같은 생활에서 해방된 안느(49세)의 얘기를 들어보자.

“제가 스무살 때 장-폴을 만났어요. 저는 그를 열렬히 사랑했지요. 그는 지적이고 유머 감각이 있는 매혹적인 미남이었어요. 그는 유부남이었고 어린 딸이 하나 있었죠. 저는 그가 아내를 때린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지만 틀림없이 그 아내에게 잘못이 있고 그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을 거라고, 저는 그를 사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그리고 어느날 처음으로 따귀를 맞았죠. 저는 공포에 질렸지만 한 번 더 제가 그를 이성적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안느의 생각과 달리 장-폴은 계속해서 그를 때렸고 5년 동안 불행과 행복이 여러차례 교차했다. 결혼 후 남편의 폭력은 더 심해졌고 안느가 괜찮은 직장을 찾았을 때는 극에 달했다. 얼마 후 안느는 임신을 했고 임신기간 동안에도 남편의 폭력은 그치지 않았다. 출산 후에도 아이가 보는 앞에서 죽도록 폭력을 가하기도 했다.

장-폴은 안느와 마찬가지로 유복하고 교양있는 가정에서 자라났다. 그는 철저한 이중인격의 소유자였다. 가정에서는 광적인 폭군이었지만 밖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존경받는 고등학교 음악선생이었다. 게다가 그는 가정에서 자신이 저지른 폭력을 한 번도 인정하지 않는 비겁한 거짓말쟁이였다.

결국 안느는 자기존중감을 상실하고 남자의 물건으로 전락해 갔던 10여년 간의 지옥생활을 이혼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안느의 사례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지난해 6월에 출판된 ‘프랑스 가정 내에서 여성에 가해진 폭력’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는 많은 프랑스인을 놀라게 했다. 그 조사에 의하면 프랑스 여성 10명 가운데 한 명이 남편이나 동거남의 폭력으로 희생되고 있고 매달 6명의 여성이 가정폭력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 또 150만명 이상의 여성이 가정 내에서 잠재적인 위험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고 한다. 설문조사를 주도했던 마리즈 야스파르는 ‘반복적인 심리폭력과 언어폭력(욕설, 공격적인 공갈 협박 등)이 신체폭력만큼 파괴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과거에 비해 나아진 것은 바로 매맞는 여성들의 빠른 자각이다. 20년 전만 해도 여성들은 남편이나 동거남의 폭력을 묵묵히 견디며 아이들이 성장하기만을 기다렸었다. 사회 전체가 폭력을 행사하는 남성보다 매맞는 여성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매맞는 여성들은 폭력적인 상황에 놓인 자신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그 사실을 감췄다.

그러나 매맞는 여성을 위한 ‘중지(Halte)’라는 단체를 운영하고 있는 마귀이 레보가 밝히고 있는 것처럼 도움을 구하는 여성들의 연령이 점차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그들은 더 이상 아이들이 성장하길 기다리면서 남자 파트너의 야만적인 폭력을 견디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시간이 지나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매맞는 것을 더 이상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희생자가 바로 자신들임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매맞는 여성들이 이같은 자각에 이르기까지가 결코 쉽지 않다. 설문조사가 보여주듯이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여성들의 침묵, 특히 유복한 가정의 여성들의 침묵은 가히 놀라울 지경이다. 가정폭력에 노출돼 있다고 밝힌 여성의 3분의 2는 그 설문조사에서 처음으로 그 사실을 드러냈다고 한다.

황보 신 프랑스 통신원/ 몽펠리에 3대학 철학과 박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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