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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김현숙/ 2002민족공동행사 추진본부 여성위원장 평화여성회 상임대표

지난 8월 14∼17일까지 서울에서는 사상 초유의 남북간 민간공동행사로 8·15민족통일대회가 열렸다. 이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분단 57년만에 최초로 116명(여성 38명, 여성부문 대표는 6명)이라는 대규모 북측 민간대표단(대표단과 예술공연단)이 서울 땅을 밟았다. 2001년 350여명의 남측 민간대표가 평양을 방문한 데 이어 또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이미 남북의 민간단체들은 2001년부터 남북 화해의 장을 차근차근 열어왔다. 2001년에는 금강산에서 6·15공동선언 첫돌 기념행사를 남북공동행사로 치렀고 이어 그해 8.15에는 통일대축전 행사를 평양에서 개최한 바 있다. 올해는 또다시 6·15공동선언 두돌 기념행사로 남북이 통일대축전을 금강산에서 가졌다. 이미 부문행사로 2001년 남북노동자대회와 남북농민대회도 개최했다. 남북 민간들이 적게는 700여명에서 많게는 1천300여명이 한꺼번에 한 행사에 참석해 대규모 민간접촉의 장을 열어 온 것이다.

6·15공동선언 이전에는 꿈도 꿀 수 없던 일이 한반도에서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이런 일련의 행사를 통해 다져진 신뢰와 우정이 있어 서해교전 사태의 상처 위에서도 무리없이 이번 행사를 마칠 수 있었다. 오는 10월에는 남북여성통일대회와 청년대회도 예정돼 있어 민간교류 활성화의 의미와 폭, 내용을 보다 키워나갈 전망이다.

남북간 민간교류 활성화와 이번 8·15 남북공동행사의 서울 개최는 극히 제한된 형태로 이뤄졌고 시작단계에 불과해서 아직은 국민 전반이 체감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것이 내외에 던지는 파장이나 역사적 의미는 매우 크다. 우선은 남북 민간들이 그들의 손으로 남북대결과 분쟁의 시대를 청산하고 남북화해시대를 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2년 동안 민간단체들이 여섯 차례의 만남을 성사시켰고 대규모 인사들이 평양과 서울을 차례로 방문했으며 하반기에는 여성대회 청년대회 등 두 차례의 만남이 예정돼 있어 이제는 남북간 민간교류가 조용한 가운데 도도한 흐름을 형성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당국간 대화와는 달리 민간들이 남북화해시대를 기정사실로, 거역할 수 없는 현실로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번 8·15 민족통일대회의 서울 개최는 서해교전사태라는 군사적 충돌로 무모한 전쟁론이 우리 사회를 한바탕 흔들어 놓은 직후에 열림으로써 충돌로 인해 정체됐던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됐다. 민간의 지속적인 화해노력은 이제 중단될 수 없는 도도한 흐름으로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 8·15 서울행사를 위해 민간단체 실무대표단이 금강산에서 실무회담을 하고 돌아온 직후 북한당국은 서해사태에 대한 유감을 발표하고 여러 형태의 당국간 대화와 이산가족 상봉, 스포츠 교류 등을 줄줄이 제안해 왔다.

둘째로 이번 8·15행사 서울개최와 민간 교류는 한반도 주민들의 평화 열망과 화해노력을 나라 안팎으로 과시함으로써 한반도에서 시도되고 있는 어떤 형태의 전쟁 지향적 시도에 대해서도 제동을 걸고 차단시키는 외교적,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다.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의 긴박성을 고려하면 이 의미는 더욱 크다. 한반도 전문가들은 한반도의 2003년 전쟁위기설을 제기하고 있다. 현재 북미간 대화가 단절돼 있고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간주하는가 하면 대 태러전쟁 확전론, 선제공격론, 소형핵무기 사용론. 외과적 공격(surgical attack) 등 전쟁지향적 말과 정책논의들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런 형편에 더해 2003년은 북한의 미사일발사 유예기간이 완료되는 시점인데다 북미간에 합의한 경수로의 완공시점이다. 그러나 경수로 완공은 지연되고 있어 2003년 북미간 갈등은 더 첨예해질 가능성이 높다. 국제사회에서는 미국의 공격목표가 ‘이라크 다음 북한’이라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미국은 북미간 협상의제로 핵 문제, 미사일 문제, 재래식무기 문제, 생화학무기 문제를 제기하고 북한의 인권문제까지도 연계시키고 있어 갈등은 쉽게 풀리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런 맥락 속에서 이번 행사와 같은 남북 민간들의 긴밀한 교류와 화해의지 과시는 어떤 전쟁기도도 거부하고 우리 민족 스스로 평화를 열어가겠다는 강력한 의사표명이다. 전쟁과 대결의 시대를 청산하고 화해와 평화를 열어 나가고 있음을 확고한 사실로 국제사회에 알리는 강력한 메시지다. 타율적으로 당한 분단과 분쟁의 시대를 우리 손으로 마감하고 우리 민족 스스로 평화를 열어가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다.

아직 시작단계인 남북간 민간교류는 여러 측면에서 한계를 지니고 있다. 당국의 통제가 아직 극심하고 민간단체들의 운신의 폭은 매우 제한돼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런 불편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남북민간의 화해와 평화지향은 이제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대세로 이어내야 하며 바로 이 길만이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라는 점이다.

전쟁은 여성에게 특별히 더 고통스럽다. 따라서 여성들은 더 이상 침묵집단으로 남아서는 안되며 통일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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