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젊은이들이 매트같은 길다란 소파에 기대앉거나 아예 누워서 술을 마시고 있다. 오리엔탈풍인 공간 내부는 동양적 신비감을 그득 머금고 있다. 아라비아풍의 벽지, 티벳에서 온 화로, 치우천황을 무늬로 얹은 탁자 등 어느 것 하나 예사롭질 않다. 지하 클럽에는 제단이 설치돼 있고 1층 바에는 붉은 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손님들은 각자 자유로운 포즈로 취해 있다. 흔히 ‘술은 앉아서 마시는 것’이란 고정관념이 여지없이 깨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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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젊은 네티즌들 사이에서 소통 부재에 대한 역설로 ‘아햏햏’라는 신조어가 유행하면서 선문답같은 말과 행동양식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진은 신촌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몽환>

이 곳을 즐겨 찾는 김성훈씨(학생)는 “공간과 자연스런 일체가 돼 스스럼없이 누워서 즐길 수 있다”고 말한다. 몽환의 매니저 김은희씨는 “복합공간이란 컨셉대로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스스로 취할 수 있는 장점이 젊은이들에게 어필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손님들은 때론 퍼포먼스를, 때론 레이브 파티를, 때론 차력쇼까지 한 곳에서 경계없이 자족하듯 즐기는 모습들이다. 이런 자족적 현상이 최근 인터넷에서도 신조어로 번지고 있다. 바로 ‘아햏햏’라는 단어의 유행이다.

의미보다 직관이 먼저인 세대들의 새 소통방식

디지털카메라 전문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www.dcinside.co.kr)에서 처음 등장한‘아햏햏’라는 단어는 애초 한 네티즌의 오타였다. 그러나 네티즌들 사이에서 이해하기 힘들거나 정의내리기 힘든, 감정적으로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아햏햏라고 말함으로써 유행처럼 번지게 됐다. 한 네티즌(ID:true free)이 “아햏햏는 아햏햏일 뿐이다”라고 정의한 것처럼 이 단어는 정의할 수 없고 의미부여를 하면 할수록 뜻이 모호해진다. 추종자들이 만든 회원 300여명 규모의 홈페이지까지 등장했다(www.ahehheh.com). 여기에서 사람들은 극존칭 하오체를 쓰면서 단어의 끝받침마다 종성모음 ‘ㅎ’을 붙이고 자신을 쫛자로 칭한다. 이 사이트를 재미있게 봤다는 한 네티즌은 “술집문화가 락카페에서 테크노바, 레이브바로 바뀌고 찻집도 테이크아웃 카페로 유행이 변하는 것처럼 일부 네티즌들의 기존 문화에 대한 부정의 코드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생소한 표기를 국어 파괴적으로 보거나 딴지를 거는 시각도 있다. 한 네티즌(ID:preko)은“독특한 집단문화를 이해는 하지만 바람직해 보이진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런 지적에 대한 자들의 시각은 다소 폐쇄적이나 전투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자러간다, 놀러간다’등 신변잡기적인 글들로 사이버 공간을 누비는‘아햏햏’자들의 행동은 안티 세력들에게 적대적이기보다는 무관심한 쪽에 가깝다. 진지한 사회문제 토론이나 의미부여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는 것도 이들의 특징이다.

다음 사이트에 관련 칼럼을 게재한 조희제씨는 “자기들만의 언어로 소통을 파괴하고 사회로부터 분리되는 듯 보이지만 이들의 행동은 역설적으로 소통에 대한 갈망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디시인사이드 대표 김유식씨는 “아햏햏 번개모임에 나가서 의외로 양복입은 멀쩡한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에 놀랐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햏햏라는 표기가 과연 맞는 것일까. 국립국어연구원 박용찬 학예연구관은 “단어의 ㅎ받침이 어법상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의미없는 말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결국 몇가지 의미로 축소되어 쓰이거나 소멸할 것이다”라며 “단어의 쓰임을 관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변화무쌍하게 의미가 변하는 ‘아햏햏’라는 단어는 일단 지루한 논쟁만이 난무하는 사이버 공간에서 자족을 추구하는 일부 네티즌들의 몸부림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세상이 뭐라 하든 나는 나’라는 자족적인 면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화여대 사회학과 함인희 교수는 이에 대해 “해독 불가능한 문자라는 것 자체가 재미있다”며 “의미보다는 직관이 먼저인 세대의 소통방식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함 교수는 “가치위주의 사고에 대한 전복이 밑바닥에 깔려있지만 어차피 이런 의미없는 행위 역시 삶의 무위성에 대한 공감 아니겠느냐 ”고 지적하기도 했다. 의미없는 말들을 뱉어내며 자기의 존재가치를 확인하는 이들의 문화가 앞으로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두고볼 일이다.

이박 재연 기자revival@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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