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지난 주 ‘신뢰’연구로 유명한 일본의 야마기시 교수와 연구협의를 하기 위해 호카이도대학이 있는 삿포르에 다녀왔다. 오도리(大通)공원을 산책하면서 발견한 엄청난 규모의 야외식당에 입이 벌어져 다물지를 못했다. 온갖 꽃 전시회로 아름다운 공원이 10여 블록이나 끝없이 이어지는데 거의 매 블록마다 간이 테이블과 의자가 수백 개씩 놓여 있었다. 식탁에서는 맥주와 안주를 즐길 수 있으며 야외 공연을 관람할 수도 있다. 야외에서 먹기를 즐기는 인간의 욕망은 인종과 국가를 초월해서 공통적인 것 같다.

“원시시대에 사냥을 해서 야외에서 바베큐해먹던 습관이 우리의 유전자 정보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야.” 자연과학자인 남편의 주장이 내게는 사뭇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래서 그런지 유학시절 중 아직도 가장 아름답게 남아있는 기억은 인디애나의 옐로우우드라는 공원에서 갈비와 불고기를 숯불에 구워먹고 벽난로 앞에 앉아서 모닥불을 지피던 일이다.

옐로우우드는 몽고메리 클리프트와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주연을 한 <젊은이의 양지>라는 영화에서 출세에 눈먼 남자주인공이 호수에서 배를 타다 여주인공을 물에 빠뜨리는 장면으로도 유명하다. 그림 같은 호수와 빼곡이 들어선 나무로 주위 경관이 아름다운 이 곳에서 우리는 늘 바베큐파티를 했던 것이다. 미국에는 지방은 물론이고 대도시에 있는 어떤 공원을 가도 한 쪽 귀퉁이에는 바베큐를 할 수 있도록 모든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바베큐 이야기를 하다보니 여러해 전 일산에 있는 호수공원이 개장했을 때의 뉴스가 생각난다. 방문객들이 공원 아무데서나 불법으로 고기를 구워먹는 통에 기름이 공원을 더럽히고 호수도 오염된다며 공원 측은 취사를 금지하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대대적인 계몽에 나선다는 소식이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고기를 구워먹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은 무조건 억누른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욕망은 풍선과 같아서 여기서 누르면 저쪽으로 불쑥 올라오게 돼 있다. 인간의 욕망을 잘 다스리는 법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욕망을 만족시킬 수 있는 합리적인 제도를 만들어 잘 운용하는 것이다.

호수도 더럽히지 않고 화재의 위험도 없는 곳에 바베큐장을 만들어 그곳에서만 취사를 하도록 하고 그 외의 장소에서 취사하는 것이 적발될 경우에는 엄하게 처벌하면 만사가 해결된다. 물론 처음에는 엄청난 인구가 몰려 혼란이 따를 것을 우려해 관리상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공무원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좀 넓은 지역을 할애하면 되고 다른 곳에 더 많은 시설을 만들면 된다.

지난주에 정치는 ‘희소재화의 권위적 배분’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어떤 정책결정이 ‘권위적’이 되기 위해서는 그 정책에 국민이 만족하고 동의해야 한다. 따라서 정치인이 국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 정책으로 만들 때에만 그 정책은 권위를 갖게 된다. 무조건 야외취사를 금지하는 것은 관리를 위한 행정편의주의의 전형적인 예다.

정치란 바로 이런 것이다. 시민들이 야외에서 고기를 구워먹고 싶어하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의 구태의연한 사고로는 정치를 제대로 할 수 없다. 문제해결에 임할 때에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긍정적 사고, 어떤 대안도 고려해보겠다는 열린 사고가 필요하다.

금욕주의만으로는 국민의 공감을 살 수 없어 정치가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정치의 영역은 단지 희소가치를 분배하는 것만이 아니라 재화가 더 이상 귀하지 않도록 풍부하게 창조하는 데까지 확대돼야 한다.

언젠가 한번은 우리 아파트 베란다에서 갈비를 숯불에 굽다가 연기에 질식할 뻔했다. 게다가 일주일이 지나도록 냄새가 사라지지 않아 그 무모한 시도를 놓고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모른다. 결국 바베큐를 즐기고 싶은 사람은 주말 펜션이나 별장 등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다.

여기에 드는 시간과 금전적인 비용을 생각해본다면 바베큐는 소수만이 즐길 수 있는 희소가치인 셈이다. 하지만 집 동네 공원에 바베큐시설을 갖춘 공원을 조성한다면 더 이상 바베큐는 희소가치가 아니다. 특권소수층만이 즐기던 바베큐를 전국민이 아무 곳에서나 즐길 수 있도록 만든다면 정치는 새로운 재화를 창출하는 창조적인 작업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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