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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폰>에는 아저씨 한 사람이 나오고 그 아저씨를 사랑하는 여자 두 사람이 나온다. 아저씨의 부인은 예쁘고 다소곳하고 가정적이다. 집을 마치 CF에나 나올 법한 모양새로 꾸며놓고 딸을 끔찍이 위한다. 아저씨가 밖에서 원조교제를 할 동안 부인은 가정을 지키는 성스러운 수호자가 된다. 재능이 있다던 그림을 포기하고 아저씨의 집에서 안락하고 화목한 가정을 꾸려간다.

또 다른 여자아이는 아저씨랑 알콩달콩 연애를 즐긴다. 아저씨 부인보다야 훨씬 어린 고등학생이고 어이없게도 원조교제를 통해서 만났다던데 아저씨를 사랑한다. 깜찍하게 자기만 전화를 걸 수 있는 핸드폰도 사주고 아저씨가 좋아하는 피아노곡을 연습하는 정성도 보인다. 언제든 아저씨가 연락을 하면 달려나와 반갑게 맞는다.

두 여자 모두 아저씨를 사랑한다고 굳게 믿는다. 아저씨 부인은 화목한 가정을 잃고 싶지 않아서 아저씨를 사랑한다는 감정에 길들여져 버렸고 고등학생 여자아이는 아저씨가 잠시 자기를 데리고 놀았다는 사실을 애써 부인한다. 아저씨 부인은 아저씨의 외도를 목격하고 착하게도 문제를 자기 선에서 조용히 처리하려고 여자아이를 만난다. 여자아이는 아저씨와 서로 사랑한다며 고집을 부리고 놀랍게도 아저씨 부인을 죽이려고 한다. 아저씨 부인이 죽으면 아저씨가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나중에 그 여자아이의 유령이 아저씨 딸에게 씌워져서 동화책을 읽을 때 “…그래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까지 읽고는 분하다는 표정으로 “쳇! 이런 게 어디 있어? 재수 없어!!”라고 말했다. 이때 나는 여자아이가 자신이 이제껏 사랑이라고 착각했던 것들이 모두 아저씨의 이기적인 욕심일 뿐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줄 알았다. 처음부터 이 영화가 ‘원조교제 하다가 죽은 여자아이가 아저씨한테 복수하는 내용’인 줄 알았던지라 그게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자아이의 복수의 칼날은 아저씨 부인에게로 향한다. 어째서?

영화는 후반부에 가서 이 모든 일의 책임이 이중적인 성격-사람을 죽이는 잔인함과 겉보기에 현모양처로 보이는 조신함-을 가진 아저씨 부인에게 있다는 듯 여자아이가 죽는 과정을 보여준다. 여자아이가 아저씨 부인을 괴롭히는 게 정당하다는 듯. 후반부에 가서 아저씨 부인과 여자아이의 실랑이를 지켜보고는 기가 찼다. 아저씨 부인은 자신의 목을 졸라오는 여자아이를 밀쳐내서 그 아이는 죽게 된다. 아저씨 부인은 여자아이를 집 벽에 묻어버리고 필사적으로 화목한 가정을 수호한다. 모든 문제의 제공자였던 아저씨는 아무 것도 모르고 단란한 가정에서 지친 몸을 쉬게 하고 행복을 맛보고 있는데 말이다. 딸이 이상한 행동을 보일 때마다 아저씨 부인은 얼마나 공포에 떨었을까. 아저씨가 태평히 잠자고 있을 동안 부인은 얼마나 죄책감에 몸을 떨었을까.

모든 즐거움은 아저씨의 몫이고 모든 고통은 아저씨를 사랑한 여자아이와 부인이 감당해낸다. 아저씨에게 있어서 이건 로맨스고 눈물나는 희생이겠지. 지고지순하게 자신만을 사랑하여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귀여운 애인. 잠깐 외도를 한 뒤에 돌아가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맞아주고 자신에게 누를 끼치지 않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는 용감한 부인.

극장을 나서면서 아저씨만의 환상을 본 것 같아서 짜증스러웠다. 언제쯤이면 아저씨한테 향해야 할 공포의 화살이 엉뚱하게 비껴가지 않고 제대로 쏘아지게 될까.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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