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숙/ 이화여대 국제 대학원 교수 choks@ewha.ac.kr

지난 도지사 선거 당시 TV토론에서 경기도지사 후보였던 진념 후보는 손학규 후보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원래 정치인하고 말하는 것 싫어하는데...”그러자 손학규 후보는 진념 후보에게 “참 빠른 시간에 정치를 배우셨군요. 정말 정치적이십니다.”

둘 다 상대를 부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정치인, 정치적, 정치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 분명하다. 미국에서도 어떤 사람에게 정치적(political)이라고 하면 매우 불쾌하게 생각한다. 정치적이라는 의미는 정정당당하게 일처리를 하지 않고 뭔가 꼼수를 부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어떤 정치인에게 “포용력이 부족하다”고 한다면 아마 매우 불쾌하게 생각할 것이다. 이는 곧 “정치력이 부족하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도대체 정치가 뭐길래 어떤 때는 부정적인 의미로 또 어떤 때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가?

동양에서 정치의 본래 의미는 한문이 표현하는 바대로 ‘바를 정(正)’과 ‘글월 문(文)’이 합쳐져서 ‘정(政)’ 그리고 ‘다스릴 치(治)’를 의미한다. 어떤 철학을 가지고 바르게 다스리는 것이 바로 정치인 것이다. 서양에서 정치(politics)란 과거 도시국가(polis)의 광장에서 민의를 수렴했던 행위를 의미한다. 이것이 현대에 와서는 ‘희소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고 정의된다.

한 마디로 정치는 자원이 희소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만일 모든 사람이 먹을 것, 입을 것, 좋은 집, 명예, 권력 등을 원하는 만큼 가질 수 있다면 정치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많지만 이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재화는 한정되어 있기에 이전투구가 벌어지게 된다. 그래서 이러한 재화를 공정하게 배분하는 정치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권위적 배분’이라는 의미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재화를 아무렇게나 배분해서는 안되고 권위적으로 배분해야 한다는 것이 정치의 핵심이다.

나에게는 아들만 둘이 있는데 둘은 서로 좋아하지만 기회만 있으면 싸움을 한다. 심지어는 먹을 것을 두고 싸우기도 한다. 내가 아이들에게 하는 최대의 봉사는 피자를 직접 만들어 주는 것인데 시중에서 파는 피자가루를 사용하면 두 아이를 만족시키기에는 양이 약간 모자란다.

“나는 동생보다 크니까 당연히 2/3정도는 내가 먹어야 돼요.” 덩치가 동생의 두 배는 됨직한 큰 애의 주장이다. “나는 못 먹어서 키가 이렇게 안 자랐으니까 많이 먹어야 빨리 크지요. 적어도 반은 내가 먹어야 돼요.” 큰 애의 말도 일리가 있고, 작은 애의 말도 일리가 있다. 피자를 어떻게 나누는 것이 가장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은 둘이 똑 같이 나눠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장담한다. 어떤 사람은 덩치에 비례해서 나눠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피자 만드는데 기여한 정도에 따라 나눠야 한다고 말할지도 모른다.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재산의 분배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듯이 정치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그래서 정치를 재화의 ‘권위적인 배분’이라고 못박은 것이다.

권위적인 배분이란 두 아이가 합의하는 방법으로 배분하는 것이다. 결국 나는 두 아이가 논쟁을 통해 해결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내가 어떤 결론을 제시한다고 해도 어차피 두 아이 중 하나는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물론 두 아이가 되도록 빠른 합의를 할 수 있도록 협상의 대안을 많이 제시하는 것은 나의 몫이다.

“피자를 반반 나눠서 먹으면 양이 모자라는 승환이는 엄마가 라면을 하나 끓여줄게.” "오늘 빨리 합의하면 다음 주에도 피자 또 만들어 줄게.” 결국 아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합의를 하고 사이좋게 피자를 나누어 먹는다.

이처럼 사회구성원이 재화를 나누는 방법에 대해 합의를 하도록 이끌어내는 과정이 정치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정치력을 발휘하려고 노력을 했던 것이다. 만일에 아이들이 합의를 하지 못하고 결국 싸움으로 치닫게 된다면 나는 정치력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정치력이 뛰어나다는 말은 이해당사자가 만족할만한 안에 합의하도록 유도해서 이해갈등을 잘 해결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정치력이 부족하다는 평은 정치인에게 있어서는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이처럼 정치는 갈등을 권위적으로 해결한다는 의미이며 우리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윤활유다. 정치는 정부에서 일어나는 것만도 아니고 가정에서나 학교, 직장 어느 곳에서나 발생하고 있다. 심지어는 연인 사이에도 정치가 발생한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모두 정치가이며 특히 어머니는 타고난 정치가다. 어머니는 집안 식구들을 따뜻하게 보듬어 안고 갈등을 극복해온 해결사이기 때문이다. 이런 어머니들이 정치를 해야 정치가 본래의 긍정적인 의미를 살릴 수 있다.

오늘날 정치와 정치인이 환멸과 경멸의 대명사가 된 것은 현실정치가 정치 본래의 의미를 살리지 못하고 실패했기 때문이다. 의약분업, 교육개혁, 개발을 둘러 싼 갈등 등은 정치력이 부족해서 발생한 문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정치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정치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정치를 살리는 것이다. 그래야 정치가 정치 본래의 긍정적인 의미를 회복할 수 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