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음 속에 스승을 모시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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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의 수도자 이현주 목사의 트레이드 마크인 해맑은 미소는 더운 갈증을 식혀주는 한 모금 샘물의 시원함이다. <사진 이기태>

어지러운 세상. 불확실한 시대.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거나 교환되지 않는 가치에 마음을 둘 여유가 없는 현대인들. 그것이 우리의 자화상이라는 생각에 이를 때면 가끔은 가슴이 미어지도록 답답해져 온다. 성숙이 아쉽고 어느 때보다 삶의 절제와 조율이 필요한 이 때, 사표가 될만한 우리의 어르신들을 찾아 조금은 먼 길을 떠나보고자 한다.

우리 사회는 어른이 없다, 스승이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주위를 조금만 둘러봐도 요란한 소리 내지 않고 구석구석에서 황폐해져만 가는 이 땅의 정신세계를 붙들어주는 어른들이 있다. 단지 우리가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고 찾아보지 않았을 뿐.

그들은 대단한 명망가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이 땅의 구체적 현실에 온몸을 적시면서도 삶의 가치와 의미는 결코 양보하지 않는 지혜로운 어르신들이다. 그 소중한 첫 만남을 가졌다. 한국의 프란체스코로 불리는 이현주 목사다. <편집자 주>

병풍처럼 넓게 펼쳐진 계룡산 자락을 배경으로 모시옷 차림의 키 크고 깡마른 체구의 한 남자가 서 있다. 무위의 수도자, 한국의 프란체스코-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는 교리와 액자와 논증 속에 붙박인 우상으로서의 신이 아니라 목마르게 구도하는 과정에서 가슴으로 신을 만났던 위대한 성인이다-로 불리는 이현주 목사다.

그가 사는 곳은 동학사 가는 길목의 공주시 학봉리. 그는 자신의 삶의 터전인 산세와도 닮은 것일까. 어슬렁어슬렁 몸에 힘 하나 안주는 가뿐한 걸음걸이로 다가오는 그는 영락없는 한 마리 학의 모습이다. 그 특유의 해맑은 미소로 기자 일행을 맞아준 그를 본 순간 갑자기 막혔던 가슴이 시원하게 뚫린다. 더운 갈증을 식혀주는 한 모금 샘물의 시원함을 맛봤다고 해야 할까. 기자는 사실 그것으로 족했다. 더는 말이 필요 없을 듯 했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의무에 충실해야 했다.

자기 마음 시키는 대로 사는 거지

"공식적인 목사직도 벗어나셨는데, 목사님은 지금 여기서 어떻게 살고 계시나요."

"재미있게 잘 살고 있어요. 애당초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건 없었어요. 자유롭게 사는 거죠. 자연과 자유라는 두 단어가 참 좋았습니다. 난 복이 많은 놈이라 생각해요. 단소 굽고, 졸리면 자고, 책 쓰고, 손님 찾아오면 노닥거리고... 속으론 미안해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살 수 있는 건가요"

"사는 건 그저 자연스러운 거예요. 너는 네 길을 가고, 나는 내 길을 가는 격이죠. 가다 보면 어차피 중심에서 만나게 돼 있어요. 대신 자기 마음 시키는 대로 사는 거지요. 각자 자기 좋아하는 일 하면서 한사람 속에는 남성도 있고 여성도 있고, 두드러진 것이 무어냐에 따라 다른 것인데, 자기의 중심이 되는 성품이 살아가는 대로 남녀 구별 없이 사는 것, 그것이 진짜 삶이겠지요. 이제껏 외모로만 구분했는데, 보이지 않는 성품이 겉으로 나타나는 형상에 의해 왜곡되지 않는 세상이라면 진일보한 것입니다."

그는 평생을 이성보다는 가슴을 좇아 살아왔다. 그에겐 원칙이나 목표, 신념 같은 틀에 박힌 붙박이 삶은 생리적으로 맞질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천지 사방에 자신을 활짝 열어두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자연 그대로를 조우하는 것이다.

내 스스로 평화로워야

"사회를 고쳐야 한다, 역사를 고쳐야 한다. 나로서는 너무 벅찬 문제였어요. 나부터 건강하게 살아야겠다 마음먹었죠.

제 아무리 하찮은 인간이라도 사회라고 하는 것과 영향을 주고받지 않고는 살 수 없어요. 나 하나 건강하면 그만큼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겁니다. 팀 낙한 스님이 말했죠.

자기 스스로 평화롭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세계를 평화롭게 하냐고 말이죠. 이를테면 내심이 평화롭지 못한데 정치를 하다니 어불성설이죠. 아이들도 그렇게 싸우진 않잖아요? 자기 자신이 닦아져 있지 않으면서 남의 발목만 잡는 정치인들... 아니죠. 당신 자신을 잘 들여다보세요. 당신 집안은 어떤가. 당신 아이들은 어떤가."

말은 그럴싸하게 할 수 있어도 어투는 못 속인다고 이 목사는 말했다. 내심이 평화롭지 못한 사람은 오히려 잡음만 일으킨단다. 그는 그래서 보이지 않는 도가 속에 있다가 때가 되면 겉으로 드러나는 덕으로써 정치를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다. 마치 꽃이 활짝 피었을 때 비로소 향기를 뿜는 것처럼 말이다. 한 순간도 제자리에 멈추어 있지 않으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 한결같이 제자리를 지키는 사람! 그런 사람이어야 만인이 그를 바라보며 저마다 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희망은 내가 어떤 의식을 갖느냐에 달려있다

그에겐 목사 되는 과정조차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무엇을 억지로 하려는 건 없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한평생 사는 건데 무엇 때문에 자기도 속이고 남을 속이는 삶을 사느냐는 것이다.

"말이 쉽지, 우리를 옥죄는 틀 안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 걸요. 참 이상하지요? 그 어떤 목표 없이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니까요.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사실 거기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버리진 못하면서 느는 건 편견과 아집뿐이네요."

"모두가 상황에 휘둘리기 때문이에요. 굳이 탓하면 내게 있는 것이지요. 이 모든 것이 다 의식의 문제입니다. 내가 어떤 의식을 갖느냐에 따라 희망도 바라볼 수 있는 겁니다. 똑같은 상황을 보고도 어떤 사람은 희망을 보고, 어떤 사람은 절망을 보는 것처럼 말이지요. 말은 쉬운데 그래서 많은 연습을 해야 해요. 평상시 마음 공부를 계속하지 않으면 늙어서 추한 모습이 돼요. 젊어서 열심히 살긴 살아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살면 말이지요. 스스로 선생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그럴 수가 없어요. 선생님을 모시고 산다는 것은 한평생을 배우며 산다는 얘기니까 거기엔 편견과 아집이 자리할 틈이 없지요."

그가 내어 주는 고정苦丁차의 쓴맛이 한없이 입안을 감돈다. "손님 접대용이라 엷게 탄 건데?"

선생님을 모시고 산다는 건 엄청난 행복이에요.

그를 이처럼 자유로우면서도 또 진지하게 세상을 살아가게 한 힘은 무얼까. 한평생 배우며 살아가는 그 마음 속에 오래도록 곱게 자리한 스승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스승은 과연 어디에 계시는가.

북극성이 지구에 대해 늘 상대적이지 않으면 그 절대적인 자리를 지킬 수 없듯 기독교 또한 인간에 대해 상대적이어야 그 절대적 진리를 지킬 수 있다고 가르친 스승 변선환. 언제고 이 목사에게 무엇을 읽어봤느냐 물었고, 늘 당신 손에서는 책이 떠나질 않았던 그는 생전에 이 불순한(?) 생각 때문에 교회에서 쫓겨나기까지 했다. 그는 이 목사의 삶에 진지함을 얹어준 고마운 스승이다. 마치 이 목사 현재의 모습과 동격이다. 이 목사는 속임수가 없고 진리에 어긋남이 없으면 다 하느님 말씀이라 하고, 기독교가 절대적 종교이기 위해 더 많은 상대적 의무를 강조해 왔으니까. 종교와 교파라는 남들의 편가름에 관심을 두지 않는 그다운 행위다. 공식 목사직도 벗은 그다. 그렇다고 목회활동을 하지 않느냐고? 그렇진 않다.

"교회를 관두었을 뿐이지 지금도 저는 목회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강의를 하거나 글을 쓰는 것이 다 그렇지요."

연세대 유동식 교수에게선 젊은 시절 멋지게 사는 법을 배웠다. "자유로운 분이었어요. 신학자이면서도 무당을 연구해서 박사가 되셨으니... 생김새도 멋있지만 보통의 시각에서 보자면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신 분이죠."

이 목사는 예수의 제자기도 하지만 노자의 법을 받기도 했다. 생전의 장일순 선생으로부터다. 노자에 심취한 장 선생이 그에게 보여준 삶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귀하게 보는 것을 귀하게 보지 않고 하찮게 보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겸손함이었다. 세상을 거꾸로 보는 지혜를 배운 것이다. "명예, 권력, 돈에 대해 사람들은 말은 그렇게 하지 않지만 은근히 그를 추구하잖아요. 저는 마음을 주지 않아요."

대신 아무 일도 안하면서 모든 일을 하고, 돕지 않으면서 만물을 돕는 무위다. 그래서 그는 오라고 하면 오고 가라면 간다. 글을 써달라면 써주고 만나자면 만난다. 이것도 저것도 없이 졸리면 자고.

"중요한 건 새롭게 보는 눈, 다른 눈으로 보잖 말이야. 얼마나 재미있어"

이 목사는 요즘 젊은이들에게서 희망을 발견한다고 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부모나 사회가 뭐라 해도 용기 있고 발랄하다. "머리 염색하는 것만 봐도 얼마나 귀여워요. 옷 찢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자체를 하니 이쁘잖아요. 월드컵에서 붉은악마 10,20대를 보세요. 월드컵은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가 하자는 대로 어색하지만 따라 해준 거예요. 엄청난 사건이죠. 그러니까 우리는 대책없이 희망적이에요."

중요한 건 새롭게 보는 눈, 다른 눈으로 보자는 거다. 그게 바로 사는 재미 아니냐는 것이다.

또 이 목사는 희망을 안 볼 수 없는 것이 바로 인터넷이라고 했다. "그거야말로 신의 선물이에요. 난 컴맹이지만 월드컵 열기는 TV와 컴퓨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과거 같으면 월드컵 때문에 묻혀져 버릴 사건도 인터넷이 미군 여중생 사건을 사람들에게 알게 했잖아요. 정보는 독점할 수 없어요. 비밀이 없는 세상이죠. 이제는 깨끗한 사람만 나와서 일하게 돼 있어요.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죠. 얼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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