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서 본 한국남성과 일본여성 커플

뉴질랜드에서 만났던 나미에게

안녕. 7월이 지났으니 너는 이미 일본에 가 있겠구나.

사실 얼마나 너에게 사과 편지를 쓰고 싶었는지 몰라.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렇게 너는 읽지 못할 것이 틀림없는 한국 신문의 지면을 빌리는구나.

사건의 발단은 그랬지. 지금은 벌써 잊어버린 어떤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시간, 나는 어쩌다가 한국남자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 돌아보면 조금 경솔했다 싶었던 한국남자 모두 해외로 수출해 버려야 한다고 말야. 지금도 이 생각의 일부분은 변함이 없다. 설마 배로 남자들 가득 실어 정말 떠나보내기야 하겠니. 가끔씩 그러고 싶을 때도 있다는 거야. 거기에 한 한국남자애가 발끈했지. 기억이 또렷하진 않지만 너도 그렇지 않다고 그 앨 한 마디 거들었어. 좋은 한국남자도 많다고. 어쨌거나 그 남자애와 너는 친했으니까. 정말 그 한국남자애와 나는 뉴질랜드 선생님이 있었던 수업시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언쟁을 지독하게도 했다.

그 때의 반감이 아주 오랫동안 남아 있었어. 너와 그 남자애는,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남자애는 수업시간에 너에게 속삭이는 버릇이 있었지. 그 다음다음 날인가 나는 공개적으로 너에게 조용히 해 줄 것을 결코 조용하지 않게 말했다. 왜 그랬을까. 싸움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해서였을까. 아니면 내가 평소에 지니고 있던, 그 때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던 일본에 대한 반감 탓이었을까. 너는 미안하다고 하면서 어두운 얼굴을 숙였다. 어쨌거나 나는 비겁했던 거야.

우리가 두고 온 뉴질랜드에는 아시아 어학연수생들이 많지. 그들의 명예를 훼손시킬 생각은 추호도 없고 사실 이 지구상 어디에서나 일어나는 일이지만 한국남학생들은 외국여자들과 동거하는 비율이 높더구나. 적어도 내 경험 안에서는 한국 여학생들이 그러는 것보다는. 서양여자와 한국남자 커플은 거의 없었어. 서양여자와 한국여자가 사귀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그러나 한국남자와 일본여자라는 커플은 드문 것이 아니었어. 그런 현상에 대한 분석은 제각각이겠지만 가장 보편적이고 내리기 쉬웠던 평가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국가적 특수성 때문이었어. 세계에서 제일 가는 아내감이라는 일본여자와 브라질 관광학과 전공서적에도 실려있다는 권위적인 한국남자.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정말 죽고싶을 만큼 창피했어. 둘은 절묘한 궁합처럼 엮여질 수밖에 없다는. 일본남자들은 무뚝뚝하기까지 하다니까.

귀국하고서 유선에서 해주던 <프렌즈> 재방송을 봤어. 주인공 토모꼬는 정말 순종적이고 애정 지상주의자더구나. 원빈이 분해서 나온 남자주인공은 정말 한국남자 같았어. 적당히 권위적이고 책임감 있는 척하고. 그녀는 드라마가 끝나갈 즈음에 말했지. 한국 수학여행 설명회를 할 때 어느 여고생이 던진 한국남자에 대한 질문에 다정하고 성실하다라는 식으로. 나는 텔레비전 안으로 뛰어 들어가 그 여고생에게 말해 주고 싶었어. 다정은 결혼하고 나서 끝이 나며 성실은 권위주의를 가장한 또 다른 모습이다 라고.

뉴질랜드에서 나는 아시아 여성이라고 해서 그 운명이 모두 같지는 않다는 것을 새롭게 알았어. 물론 농촌지역이나 하층계층으로 가서는 그 모습이 다르겠지만 타이완, 중국 심지어 그다지 유명하거나 앞서 있는 나라는 아니라고 생각되던 태국여성들마저도 무심하게 우리나라는 남녀평등이다 라고 말했어. 경제적으로 선진국이 남녀평등 면에서 선진국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그 기회에 절실하게 느꼈어. 그 예 중 가장 뚜렷한 것이 일본이 아니겠니. 우리는 차별을 많이 받는다 라고 말하던 일본여자들의 하나 같은 소리.

그러나 나는 오히려 거기에서 하나의 작은 희망을 보았지. 우선 일본여성들에게서 한국여성들이 정신대 문제 등에 대한 사과와 공감을 받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리고 연대할 수는 없을까. <프렌즈>에 나와야 하는 것은 원빈이 아니었어. 다른 한국여자여야 했어. 그렇게 해야 드라마의 제목과 맞는 거였어.

2002 한일 월드컵은 끝이 났다. 너는 한국과 어느 나라 사이에서 벌어진 경기를 어학원에서 밤을 새워 가며 한국아이들과 응원했다지. 그래, 덕분인지 한국은 많이도 이겼어. 거리 응원단 중에 여성들의 비율이 높았다고 하면서 뉴스에서는 여성들의 힘을 끌어 모아야 한다 어쩐다 하지만 당장 취업원서를 쓰는 나의 손은 너무나 무겁기만 하구나. 그렇게 아직 한국은 월드컵이든 뭐든 남성들만의 축제가 벌어지는 나라인 거 같아. 그냥 손뼉만 치고 있고 싶지는 않은데. 나도 한 번 멋진 슛을 날리고 철통 수비도 해보고 싶은데.

그러나 너와 나의 월드컵은 아직 끝나지 않지 않았니. 아직 내가 전하지 않은 사과처럼, 그렇게 우리의 현실은 남아 있지 않니. 나는 그렇게 아직 끝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최희자 diana31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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