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숙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의 모임 회원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 사람들은 초면에 으레 나이, 결혼 유무, 가족관계 등을 먼저 묻고 나서야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리고 상대방이 기혼인 경우 자녀의 수와 성별, 나이까지 묻고 그것도 부족하여 아이가 하나인 집은 둘째아이는 언제 낳을 거냐 라든지, 외동딸이나 딸만 둘인 경우 아들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덕담(?)을 잊지 않는다. 물론 요즘은 아들만 있는 경우에도 딸이 없어 허전하지 않느냐는 말들도 심심치않게 들리지만 아들이 없는 장남가정에게 주어지는 부담이나 강요는 이와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차원이다. 그것은 주위를 볼 때 외아들에 비해 외동딸의 수는 턱없이 적고 뱃속에서 성별을 감별해 인위적으로 낙태되는 아이는 모두 여아라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딸이 키우기도 수월하고 키우는 재미도 쏠쏠하다느니, 나중에 크면 딸은 엄마 친구가 돼 말동무도 돼주고 노후가 쓸쓸하지 않다느니 하는 말들은 무성하고 그 말들은 실제로 사실인데도 왜 부모들은 아들을 선호할까. 아빠들의 아들선호는 차치하고 엄마들까지 아들을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과거에는 시집온 며느리가 그 집안에 대를 이을 아들을 낳아야 비로서 그 집안의 가족으로 인정받고 며느리의 지위에서 아들을 낳은 '엄마'로 격상됐다. 그래서 혹독한 시집살이를 하던 며느리가 아들을 낳고 나서야 한숨 놓을 수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하고 딸만 낳은 며느리는 무언가 의무를 다하지 못해 마음을 졸이고 아들을 낳을 때까지 낳는 것이 다반사였고 심지어 아들을 입양하거나 외도해 아들을 낳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철벽같이 단단한 가부장제 사회를 어떤 여성 개인이 저항한다는 건 계란으로 바위치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쉬운 길을 택해 가부장제에 내면화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뿔사! 이런 일들은 이제는 자취를 감춘 '과거'의 일이 아니었다. 과거엔 무조건 아들 낳기를 기다리며 아이를 많이 낳았다면 이제는 '아들 낳는 법'이라는 기묘한 형태와 초음파검사를 통해 인위적인 선별이 가능해졌을 뿐이다. 우리 어머니 세대와 그 정도와 수위만 다를 뿐 몇 달 전 아들을 낳지 못해 자살한 종갓집 며느리의 극단적인 사건이 아니더라도 아직까지도 아들을 낳고서야 시가의 부담에서 마음을 놓게 됐다는 며느리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들을 선호하는 엄마, 혹은 부모를 탓하기 전에 이런 부가입적과 아들중심 호주승계를 중심으로 하는 호주제도와 같은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면 이를 개선해야 할 것이다. 구조적인 문제를 그냥 두고 아들을 선호하는 엄마와 태아의 성별을 알려준 산부인과 의사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남아선호를 암묵적으로 명시한 호주제를 폐지하는 것은 이런 모든 문제를 풀어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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