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서울지법이 직장 내 연하 남성직원을 성희롱한 여성 상사 2명에 대해 손해배상 판결을 내림으로써 최초로 남성이 직장내 성희롱 피해자로 인정됐다. 사건의 내막을 살펴보면 여직원들이 갓 입사한 후배직원에게 ‘영계 같아 좋다’는 등의 농담을 하고 엉덩이를 만지거나 뒤에서 껴안는 등의 행위를 한 것이나 피해자가 회사 간부에게 피해사실을 호소하자 사측은 피해자를 돕기보다는 오히려 ‘소란을 피운 죄’를 물어 위협을 가해 사표를 내도록 유도했다는 점에 있어서나 여타의 직장 내 성희롱 사건과 비슷하다.

성폭력은 성적욕구 아닌 권력의 문제

여성이 남성에게, 동성간에도 발생

이 사건을 집중적으로 보도하는 일부 언론의 태도에 대해 많은 여성들이 전체 성폭력 사건에 비하면 아직 ‘새발의 피’에 불과한 성인남성의 성폭력 피해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아니냐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성폭력상담소를 비롯한 여성단체들은 “한편으로 남성의 성폭력 피해사례들은 성폭력이 ‘성적욕구가 강한 남성에 의해 발생하는 우발적인 사고’라는 그릇된 통념을 깨고 ‘그 본질이 권력관계에 있다’는 점을 입증시켜준다”고 지적한다.

신뢰할만한 통계치는 잡히지 않지만 여성가해자로부터 성폭력을 당하는 남성피해자들은 이전에도 있었고 점차 증가추세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성의전화의 이옥 소장은 “미혼남성인 경우 연상의 기혼·미혼 여성으로부터 스토킹이나 성폭력을 당해 상담요청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교제를 하거나 알고 지내게 된 여성이 본인은 원하지 않는데 집으로 찾아와 성관계를 요구하고 응할 때까지 나가지 않거나 가출해서 남편에게 알리겠다고 협박을 하는 경우 등이다. 또 직원 대부분이 여성인 직장에서는 소수인 남성직원이 성희롱을 당하는 사례도 종종 접수되고 있다. 대부분의 남성피해사례는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여성’이 가해자다.

성폭력 피해여성들의 경우 ‘행실이 단정치 못한 여성’이란 사회적 낙인이 두려워 피해사실을 선뜻 알리지 못하지만 남성들은 ‘남자 체면에…’라는 창피함때문에 쉽게 상담을 요청하거나 신고하지 못한다. 이 옥 소장은 “이번 판결로 ‘남성은 성폭력을 당할 수 없다’는 인식이 전환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성폭력상담소 권주희 정보사업담당 간사는 “법률적으로는 여전히 남성피해자의 경우 강간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 동성간에 일어나는 성폭력에 대해서도 강제추행의 죄 정도로 다루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한다.

최근 이화여대에선 동성간 성폭력 사건에 대한 피해자들의 고발이 잇따랐는데 ‘이화내 동성간 성폭력사건 해결 및 처리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4∼5명의 피해자들이 몇달에서 길게는 몇년간 A씨의 과도한 신체접촉 등 성추행으로 인해 성적인 불쾌감을 느꼈고 혼란과 고통을 겪어왔다. 결국 가해자 A씨가 사과문을 쓰는 등 피해자들의 요구에 응하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 지어졌지만 그 과정에서 A씨가 ‘나는 전혀 성적인 의도가 없었다’

‘남성은 성별권력을 가지고 있지만 여성인 나는 그렇지 않다’ ‘동성간 성폭력은 이성간 성폭력과 다르게 해석돼야 한다’는 등의 이유를 대며 자신의 행위가 성폭력임을 인정하지 않아 논란이 됐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측은 “성폭력이란 상대에게 성적 불쾌감을 주는 말이나 행동이므로 가해자가 남성이냐 여성이냐, 이성에 대한 행위냐 동성에 대한 행위냐, 가해자의 성적 의도가 있었나 없었나 등이 성폭력 여부를 결정짓는 요인이 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이같은 지적은 오래 전부터 여성계가 입을 모아 주장해 온 “남성 성기중심적으로 성폭력을 규정하지 말라”는 요구와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조이 여울 기자 cognate@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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