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최초 여성총리 지명 의미 되새기는 자리 마련

진통 끝에 난산이었다. 여성계가 장상총리서리에 대한 공식 입장을 어떻게 표명할 것인가를 두고 주요 여성단체 대표들은 주말과 공휴일도 잊은 채 세차례에 걸쳐 비공식 모임을 가졌다. 그리고 오는 22일 프레스센터에서 ‘최초 여성총리 지명의 의미를 나누는 여성모임’을 갖기로 최종 합의했다.

비공식 모임에 참석했던 주요 여성단체 대표들은 22일 행사가 여성계 전체의 입장을 대표하는 형식이 아님을 분명히 밝혔다. 이번 사안에 대해 충분히 각자 의견이 다를 수 있고 그런 이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전제하면서 “지금까지 제기된 도덕적인 문제에 대해 유감표명과 사과가 필요한 것은 해야 한다. 그러나 장 총리 서리가 심각한 위법 사실이 없는 이상 드러난 여러 문제점은 인사청문회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도록 하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또한 한국 역사상 여성 최고위직 진출의 첫 기회를 맞은 만큼 장 총리서리의 경영능력, 친화력, 정치적 중립성, 포용력, 추진력이 현 시국 수습과 대선국면에서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자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22일 행사는 여성계의 그동안의 경과보고와 강원룡 목사, 이경숙 숙대 총장, 김현자 전국회의원 등 원로에게 듣는 ‘최초의 여성총리 지명의 의미’에 이어 이경숙 여성연합 대표의 입장발표 순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행사가 끝나면 3당 대표를 방문해 “정치권이 총리임명을 정쟁의 수단으로 이용하지 말고 민생해결과 국정운영에 주력할 수 있도록 총리 인준을 기대한다”는 내용을 전달할 예정이다. 3당을 방문하는 자리에는 은방희 여협회장, 이경숙 여성연합 대표, 지은희 여성연합 고문, 손봉숙 여성정치연구소 대표, 이춘호 여성유권자연맹 대표, 이김현숙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대표, 신혜수 한국여성의전화연합 대표, 김상희 여성민우회 대표 등이 동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이번 달 말에 치뤄지는 인사청문회를 방청하기로 했다.

‘최초 여성총리 지명의 의미를 나누는 여성모임’이 탄생하기까지는 고난의 시간들이었다.

공식입장을 표명하지 않기로 했지만 개별적인 행동에도 조심하는 등 줄기차게 전화를 걸어오는 기자들과의 숨바꼭질만으로도 이번 일이 얼마나 큰 부담감을 안겨주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행사 방식을 놓고도 며칠에 걸쳐 장시간 열띤 논의가 거듭됐다. 애초 논의됐던 축하모임 형식과 기자회견, 지지를 호소하는 단순 모임, 행사 진행 후 장상 총리 서리를 방문하는 문제 등을 놓고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던 배경에는 언론의 호들갑을 잠재우는 일과는 또다른 문제들이 자리했다.

김활란 추모사업 등 이대 총장시절 장상 총리서리의 국민적 정서에 반하는 일부 행적들이 여성계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자칫 여성이 총리가 됐다는 이유만으로 여성계가 무턱대고 지지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에 대한 부담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다.

개각이 발표된 11일 오후 “헌정사상 처음으로 여성총리서리가 탄생했다는 것에 적극 환영”한다는 성명서를 냈던 여성민우회, 여성정치연대 등 여성계는 이후 각종 시비가 불거진 다음부터는 각종 언론의 여러 반응들에 대해 일체 입을 다물었고 개별적인 의견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노코멘트’로 일관하는 등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장상 총리서리 논쟁에 대해 여성계가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그러나 여성계 인사들 대부분은 “모처럼 여성시대를 맞이할 수 있는 파격적인 계기를 맞았다”는 데는 공감했다. 비록 도덕적 시비가 일어 완전하게 기쁨을 누릴 수 없는 상황이 아쉽기는 하지만 여성총리가 나올 수 있었던 것만큼은 여성계가 거둔 분명한 결실이라는 것이다.

한 여성계 인사는 “한국과 같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장상 총리서리 정도의 재목과 지도력을 키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오랜 세월이 걸렸다. 국민들을 섭섭하게 한 부분은 있지만 그렇다고 기대할 수 있는 능력을 같이 버려야 되겠는가. 이런 기회가 오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불거진 문제로만 호도할 수는 없는 문제다. 또 이점이 여성계의 딜레마이기도 하다”고 털어놓았다.

또 다른 여성계 인사는 “도덕적으로 걸리는 부분들이 찜찜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지도자로서 도덕적, 사적으로 미달된 부분이 지금 충돌을 겪고 있는데 심각한 위법이라고 드러난 명백한 사실이 아직 없지 않은가. 우리 정치 현실을 보면 남성 공직자들에게는 쉽게 넘어간 부분이 여성이어서 더 엄격하게 적용된 측면도 있고 이제는 청문회라는 제도적 장치가 갖춰졌을 만큼 국민의 의식수준이 높아져 엄중한 잣대를 들이댄 측면도 있다. 이번 기회는 여성계가 여성지도자 육성의 본질을 깨닫는 뼈아픈 기회였다. 단순히 여성해방만 외칠게 아니라 한 사회가 유지해야 하는 도덕성과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고려하는 여성운동가로서의 참모습을 그려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영희 내일신문 부회장은 지면을 통해 ‘장상 총리서리에 대한 변명’이라는 제목으로 “얼마나 주어진 책무를 사심없이 다하는지 평가받게 하자. 국민의 기대에 부응해 3개월이 지난 후 평가받고 능력이 부족했다면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스스로 물러나는 모습도 아름다운 것”이라며 “이번 과정을 통해 사회지도층의 평소 생활과 철학의 기본 매뉴얼이 정해지고 있다”는 논평을 내놓았다.

인사청문회법 개정 이후 처음 있을 인사청문회에서 장상 총리서리가 여성이라는 편견에 치우쳐서 평가되지 않고 그의 정견을 확인하는 과정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여성계의 희망이다.

임기말 7개월 총리라는 아쉬움과 여성은 항상 전환국면용으로 공직에 진출한다는 의혹을 불식시키고 대통령에 직언하고 부패척결, 공명선거의 기초를 다지는 첫 총리가 되기를 바라는 여성계의 기대는 그래서 더욱 크다.

박정 희경 기자 chkyung@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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