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 총리서리와 언론

언론의 딴지걸기는 여성의 직위가 높을수록 강도를 더한다. 국민을 차분히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보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본질을 흐리게 하는데 혈안이 된 언론의 행태는 이번 장상 총리서리 지명 보도에서 극에 달했다.

지난 11일 개각이 발표된 이후 각 언론은 ‘헌정 사상 첫 여성총리 발탁’을 헤드라인으로 크게 뽑고 ‘첫 여성총리의 정치 실험’을 차분히 지켜보는 듯 했다. ‘총리에 장상 이대 총장’이라는 비교적 차분한 목소리도 있었지만 ‘첫 여성총리 쇼크’라는 다소 과장된 반응을 보인 언론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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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개각 발표 다음날부터 우리 언론은 유례없는 집중 난타를 시작했다.

‘큰아들 국적 논란’으로 시작된 새 총리서리의 도덕성 시비는 곧바로 ‘장 총리서리 인준 못한다’는 제목으로 발전, 연일 신문지상에 오르내렸다. 국정수행능력이나 행위의 위법성을 지적할만한 게 없는 상태에서 단지 국민정서를 자극, 선동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새로 지명된 총리, 그것도 첫 여성총리에 대한 여러 각도의 정보는 불행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개각 다음날 한겨레가 거의 유일하게‘대선 공정관리에 최선, 이대 첫 기혼총장, 추진력 돋보여’라는 제목으로 그리 길지 않은 정보를 제공했을 뿐이다. 그나마 한겨레조차도 ‘남편이 본 총리 꼼꼼하고 융통성 갖춰’라는 기사로 마무리, 첫 여성재상에 대한 인물 정보는 고작 남편의 평가에 의존한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지금까지 어떤 남성공직자도 부인에게서 평가를 받은 사람은 없었다.

동아일보나 매일경제 등 일간지 4단 만화와 만평에서도 뒤질세라 여성비하적인 인식을 그대로 드러냈다.

여인천하를 이룰 것인지 걸레질만 할 것인지 의문을 품는 내용이나 밖에서는 대통령에게 집에 와서는 남편에게 90도로 고개숙여 인사를 하는 내용, 홍수로 물에 잠긴 지붕위에 우산을 쓴 채 당혹스런 표정이 역력한 장상 총리서리에게 이번에도 유아무야 넘어가리라 기대하지 말라는 남성의 외침을 담은 만화와 만평들을 통해 우리 언론은 어떤 것이 여성비하적인지 조차도 모르는, 여성인식이 전무함을 그대로 노출시킨 셈이다.

결국 우리 언론은 여성이라고 봐주지 않겠다는 식의 논조로 실상은 남성에 비해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심판하려는 속셈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새 총리서리와 여성비하가 함께 맞물려 마치 인물의 도덕성 시비 논란을 보도하는 듯 독자들에게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실상 여성이 대부분 맡고 있는 가사일을 하찮은 일로 매도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총리의 이인지하’를 운운하며 공직에 나선 여성들은 남편과 대통령이 동격으로 깍듯이 모셔야 할 대상으로 그렸고 여성은 원래 언론을 대하는 태도가 능숙하지 못한 것처럼 비웃었다.

급기야 “대통령이 아플 때 여성총리가 해내겠냐”는 김무성 의원의 발언은 여성계의 반발을 샀고 조선일보 칼럼에서는 ‘막가는 끝내기 정치의 희생물로 등장한 여성총리’라며 여성은 언제나 분위기 쇄신용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이른다.

장상 총리서리를 둘러싼 각종 도덕성 시비에 이어 최근에는 스포츠 신문까지 가세해 초등학교 생활기록부가 공개되고 ‘모범 우량아’라고 지칭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의 사주풀이까지 등장해 ‘이름을 떨치지만 험난한 길이 예정되어 있었다’고 보도함으로써 지금의 언론 공격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게 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 네티즌 조사에서 ‘여성총리 임명은 여성유권자를 겨냥한 것’이라는 응답이 51.9%나 나왔다는 보도도 여성총리를 배출할 만큼 여성권익이 향상된 현실을 애써 무시하고 있다.

또 연합뉴스도 ‘여성계가 장상 국무총리서리를 둘러싼 의혹이 지나친 여론재판이라며 반발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59%가 반대한다는 의견이 나왔으며 새 총리서리가 지금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을 던져 당장 직무를 중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가장 많이 나온 인터넷 조사를 홈페이지에 올려놓고 있다.

앞의 질문에 참여한 네티즌은 총 821명 중 남성이 730명으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질문의 수준도 다분히 의도적인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사 결과만 보면 여성계가 단순히 여성이기 때문에 비호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당리당략적 차원에서 여성 비하 발언을 일삼는 정치권을 경계하는 여성계의 요청은 일부 네티즌들에 의해 여성이라 무조건 편든다는 단론으로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들은 여성계가 장상 총리서리의 도덕성이나 철학을 검증받을 필요조차 없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님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아예 여론을 봉쇄하는데 앞장서기도 한다.

그러나 젊은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김활란 추모사업이나 아들 국적문제, 의료보험 등 그의 전적에 문제는 있지만 이것이 앞으로 국정 수행 과정에서 걸림돌로 나타난다면 그 때 엄중하게 문책하자는 이성적인 의견들도 눈에 띈다. 첫 여성총리 지명과 그에 따른 논란은 우리 사회 타락한 주류세력의 전형을 직시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안타깝다지만 언론의 흡집내기로 물러나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동안 정계는 여성이 국정경험을 쌓을 기회조차 차단시킨 채 남성들만의 철옹성을 쳐왔다. 여기에 언론이 가세해 간혹 발탁된 여성 공직자가 능력을 펼쳐보이기도 전에 눈물을 보였다는 이유로, 국무회의에서 신발을 벗고 있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는 이유로, 예술계를 대표해 후원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국정에서 끌어내는데 앞장서왔다.

측근들에 의해 대통령의 눈과 귀가 차단돼 국정이 혼란스럽다며 요란하게 떠들던 언론은 정작 자신들이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고 있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어 보인다.

문제를 지적하는 방식에서 이제는 좀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언론의 중요성이 새삼 요구되는 때이다.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 끝만 보는 근시안적 우리 언론들이 여론주도의 책임감을 한층 더 느껴야 할 때이기도 하다. 여성들은 물론 국민 모두가 그런 주류 언론의 본모습을 알고 쉽사리 휘둘리지 않을 지혜를 길러야 할 때이기도 하다.

박정 희경 기자 chkyung@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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