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장어 스튜’로 2002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창작집 <꿈꾸는 마리오네뜨>를 출간, 올해 단연 주목받고 있는 소설가 권지예. 그는 주로 결혼제도 안에서 여성의 욕망과 일탈, 그리고 일상의 쓸쓸한 안온함에 대한 주제를 넌지시 독자에게 던진다. 오랜 시간동안 성실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풀어놓은 그의 작품세계를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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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년대를 거의 파리에서 보냈기 때문에 한국 여성문학의 흐름이나 경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었다고 본다. 그럼에도 권지예 씨의 소설이 90년대 등장한 많은 여성작가들의 소설경향과 맥을 이루고 있는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91년부터 99년까지 한국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물리적으로는 여성작가들이 등장, 조망받았던 90년대의 흐름과 많이 벗어나 있던 게 사실이다. <꿈꾸는 마리오네뜨>를 쓰고 난 후에야 여성작가들의 소설들을 읽어봤다. 여성문제, 여성의 사랑과 욕망에 대한 작품들이 많더라. 내 경우 외국에 살아서인지 외부적인 관계나 사회적인 상황보다는 내가 처한 관계의 문제에 시선이 많이 갔다. 자연스레 관심분야가 ‘부부 관계’로 이어졌고 자연스레 자기정체성에 대한 문제로 갔다. 90년대 여성문학의 흐름과 경향 속에 있는 것은 우연의 일치이기도 했지만 어찌 보면 그것이 많은 여성작가들에게 절실한 문제였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 여성작가의 경우 성이나 불륜을 이야기할 때 가십거리가 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경험지반이 소설 전반에 깔려있기 때문에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을 것 같은데.

“사실상 내 작품의 주제가 단순히 ‘불륜’이라고 읽힐 수는 없다. 하지만 한국상황 안에서 여성작가들의 작품과 주제를 소개시키는 방식에 있어서 여성작가들의 소설 경향을 인위적으로 분류하는 것에 당황했다. 그래서 단순히 불륜을 쓰는 여성작가라는 표현이나 매스컴의 소개방식이 이런저런 소문을 낳기도 했다. ‘부부간에 문제가 있다’‘이혼해서 혼자 산다’등.(웃음) 지금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불륜을 이야기하는 것, 또한 그런 여성이 주인공이 되는 소설을 쓴다는 것에 대한 전형적인 시선이 불만이긴 하다. 윤리적으로 용서를 못하는 시선은 남성적인 것 같다. 어떤 독자는 “자기 아내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 소설”이라고 하더라.(웃음)”

- 작가의 소설에 나오는 여성캐릭터들은 일정의 경향성을 지니고 있다. 여성캐릭터를 구상할 때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내 소설에 나타난 여성들에 대해 어떤 독자가 “여자들이 너무 초연한 것 같다”는 평을 한 적이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당당한 여자’를 그리고 싶다. 남자에게 매달리지 않는, 내가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스스로 고민하고 자신의 존재를 남성에게 의탁하지 않는 여성. 여성에게 ‘지적’이라는 건 그런 의미에서 또 하나의 무기일지도 모른다.”

- 작가의 작품에서 여주인공이 꿈꾸는 일탈의 대부분이 남편이 아닌 다른 남성과의 섹스나 사랑으로 이어지는 듯한데.

“자유를 꿈꾸는 여성들의 열망이 성이나 사랑에 초점을 맞춰 그려진 게 사실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많은 30, 40대 한국여성들은 새로운 사랑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다. 그만큼 사랑이란 것이 보편적인 감정이니까. 많은 독자들이 내 소설을 읽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동시에 자신의 일상과 여성으로서의 성과 사랑을 되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내 경우에 있어서 사랑이란 축복이 아니다. 사랑에 대한 환상은 없다. 사랑은 인간을 억압하는 또 하나의 기제라는 생각이고 아직 그 주제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아서 작품에 많이 나타나는 것 같다. 앞으로는 다양한 방식으로 그려내고 싶다.”

- 언제나 쉴 수 있는 섹스파트너이자 친구인 여자의 정부랄지 혹은 불륜을 알고도 덮어버리는, 그리고 결국 아내를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대는 남편 등 남성 캐릭터가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진다. 불륜에 있어서 여성과 남성의 맥락은 너무나 다르다. 소설 속 관계가 지나치게 관념적인 것이 아닌가.

“작가의 개인적인 성향일 수도 있다. 파리에 살고 작품을 쓰다 보니 남녀관계나 남성을 그리는 시각이 조금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파리와 한국의 부부관계는 많이 차이를 보이니까. 단순히 윤리적인 문제로 불륜이 옳으냐 그르냐를 그리고 싶었던 게 아니다. 단지 오랜 세월 함께 사는 부부 사이에 사랑이나 소유, 집착이 아닌 무엇이 있겠다 싶었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오래된 친구같은.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이상적이라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불륜을 두고 악다구니하는 현실에 대한 접근보다는 같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서로가 변화하고 인정하게 되는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 내 작품의 경우 20대보다는 30대, 30대보다는 40대가 더 공감하는 것 같다. 사랑에 대한 환상이 꺾어지고 뒤집어지는 과정 속에서 고민하게 되는 결혼관계에 대한 공감이 있는 것 같다.”

- ‘꿈꾸는 마리오네뜨’를 비롯해 몇몇 작품 안에서 부부가 서로의 불륜을 알고 있으면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덮어버린다. 결국 아슬아슬하게 지켜나가고 있는 부부관계, 결혼제도에 대한 허무함과 자포자기를 표현하는 것인지 혹은 평화나 화해의 메시지를 담는 것인지. 결국 집으로 돌아가는 그녀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가.

“결국 돌아올 수밖에 없는 현실성. 그런 의미에서 내 소설의 결말은 비극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건 밖으로 나가느냐 돌아오느냐가 아니다. 다시 돌아왔을 때 그녀가 어떻게 달라져 있느냐, 그리고 남편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다. 두려움없이 부딪쳐 본 후 세계를 무너뜨리지 않고 다시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이 중요하다. 내 소설 속 인물들은 각자가 사랑을 경험해 본 사람들이다. 그리고 사랑의 시험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랑의 열정 역시 영속적이거나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름대로의 사랑을 겪어본 그들은 자기 안으로 상처를 묻으면서 이겨내는 방법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결론은 사실상 열려있는 것이다.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는.”

- 한 평론가가 ‘꿈꾸는 마리오네뜨’에서 여주인공이 남편의 불륜을 눈치채고서도 덮어버리며 다시 호흡을 가다듬는 마지막 장면에 대해 ‘남녀 평준화의 실현’‘페미니즘 문학의 나아갈 바’라고 평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찌 보면 프리섹스가 남녀평등이라고 주장하는 남성본위의 논리와 별로 다르지 않다고 보는데.

“솔직히 페미니즘이냐 아니냐 라는 잣대는 그렇게 반갑지 않다. 나는 남자와 마찬가지로 여자도 불륜을 한다 식의 소설을 쓴 것이 아니다. 페미니스트 그리고 가부장적 남성이라는 구도 안에서 어찌 보면 내 소설은 애매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빌미를 제공하는 소설일수도 있다. 지나친 범주화나 지향에 대한 선긋기는 원치 않는다.”

- 앞으로 준비하고 있는 작품의 주제는 어떤가?

“아무래도 부부나 사랑이라는 소재를 조금은 탈피해 보려고 한다. 물론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의 경험이나 생각들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유효하겠지만 소재의 확장을 생각하고 있다. 20대 학생들의 생각이나 문화에 대한 접근도 해보고 싶고 여성의 성장소설에도 관심이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인터넷도 찾아보고 학생들도 관찰해보고 하다보니 긴장감이 느껴진다. 워낙 여성작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주제의 다양화나 차별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상 여성작가들의 작품이 ‘거의 비슷비슷하다’는 평가를 들을 때마다 보다 다양한 접근의 필요성을 느낀다. 기본적으로 내 작품의 화두는 자유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의 틀을 벗어나면서 자유롭게 사는 것. ”

문이 정민 기자 knnif@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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