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도록 퍼 주어야 한다”

군인들도 상당수 굶어 죽어가고 있다

사람 살리는 일에 야박해선 안될 것

북한난민 지원단체들은 중국 내 북한난민이 10만∼2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90년대 중반부터 중국에 들어가 북한난민들에 대한 구호활동을 펼쳐 온 ‘좋은벗들’(www.jungto.org/gf)은 1999년 6월 중국 동북부지역 2479개 마을 현지조사결과를 담은 ‘북한 식량난민의 실태 및 인권보고서’를 발표하고 남한과 세계 각국에 지원을 호소해왔다.

1997년 8월부터 2001년 4월까지 4년여간 중국에서 북한난민 구호활동을 펼쳐 온 정토회 구미경 간사(당시 좋은벗들 활동가)를 통해 북한난민의 실태와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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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난민에 대한 지원활동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나.

“한국서 옷과 지원금을 준비해 가서 중국 국경지대에 사무실을 꾸리고 활동했다. 주로 밤에 만나 돈과 약, 옷 등을 전달하고 낮에는 약품을 구입하거나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했다. 처음엔 북한사람들이 남한사람을 만나는 것을 몹시 두려워했기 때문에 조선족들이 연락망이 돼주었다. 몇 년 후에는 오히려 북한난민들이 우릴 찾아왔다.”

- 중국에 있는 북한난민의 실상에 대해 말해달라.

“너무나 절박하다. 아사지경이 돼서 죽음을 각오하고 국경을 넘어왔지만 중국에선 공안을 피해 도망 다녀야하고 노예처럼 일하면서 중국인들의 차별도 감수해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중국에서 먹을 것을 구해 가지고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 가족을 먹이는 일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들은 감시를 피하기 위해 돈을 비닐에 넣어 먹거나(비닐똥) 자궁에 집어넣기도 한다. 가장 비참한 건 여성과 아이들이다. 이들에겐 소설에서보다 더 잔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여성들은 인신매매 당하거나 강제혼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강간도 심하고 도망 못하게 발가벗겨놓거나 침대에 손발을 묶어놓는 등 물건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다. 또 직접 목격한 것은 아니지만 중국 공안에 잡히면 몸에 구멍을 내 꿰어서 북한으로 끌고간다는 얘길 조선족들을 통해 수도 없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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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으로 월경한 함흥 출신 30세 북한난민여성. <자료 제공·좋은벗들>

- 그간 북한의 사회상에 대한 정보도 많이 얻었을 것 같다.

“북한사람들은 절대 남한사람에게는 그런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자신들을 도와주는 조선족들에게는 털어놓기 때문에 조선족을 통해 정보를 얻었다. 북한에서 3백만명 가량이 굶어죽었다는 사실에 대해 사람들은 너무 과장된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지만 나는 그 이상일 거라고 본다. 배급이 완전히 끊긴 90년대 중반 들어서는 6·25때보다 더 많이 죽어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 오늘은 가족 중에 누가 죽었다는 내용의 대화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장사에 나섰고 그런 분야에 무능한 인텔리 계층이 제일 먼저 굶어죽었다고 한다. 폐쇄된 공장에 남아있는 부품들을 뜯어 팔았다가 총살을 당한 사례도 있었다. 북한은 이젠 돈이면 뭐든(국경지대 수많은 초소를 거치면서 군인에게 돈을 주고 넘어오는 경우가 많다) 할 수 있게 되었고 나라가 어려울수록 부익부빈익빈 현상은 심각해지고 있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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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꽃제비’라 불리우는 북한 장마당의 굶주린 고아어린이.

<자료제공·좋은벗들>

- 북한주민들의 통일의식과 인권의식을 가늠해본다면.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이 통일을 절실히 원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당장 굶어 죽어가고 있으니 어떤 변화라도 생기길 바라는 것이다. 북한난민들은 중국에서 무시당하면서도 민족에 대한 자부심은 상당히 강해 보였고 나도 그런 점에서 긍지를 느꼈다. 그러나 북한의 인권의식은 조선시대와 비슷한 것 같다. 당장 장사를 나가 생계를 꾸리는 것은 여성들인데도 북한남성들은 여성을 엄청나게 무시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남성들은 집안 일은 절대 하지 않고 큰 소리만 치며 술과 담배에 빠져있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굶으면 구걸이라도 하러 길바닥에 나오지만 북한남성들은 집에서 조용히 숨을 거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체면을 차린다는 의미로 그런 말을 쓴다.”

- 중국에서 쫓겨날 때의 상황에 대해 말해달라.

“2001년 4월 두만강 변에서 중국 공안에 미행 당해 잡혔다. 사실 중국이든 북한이든 우리의 활동을 모를 리가 없기 때문에 각오는 하고 있었다. 그들은 “왜 남의 나라(중국)에 와서 제3국(북한)에 대한 간첩행위를 하느냐”고 했다. 우린 순수한 목적이라고 말했지만 계속 간첩행위를 시인하라고 다그쳤다. 몇 달 감옥에 갇혀 있다 풀려 나와 한국으로 오게됐는데 공식적인 판결을 받은 건 아닌 것 같다.”

- 북에 대한 지원은 군만 살찌운다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햇볕정책 비판하는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말하지만 우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면 그렇게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에선 군인들도 무수히 죽어나가고 있다. 군에 보냈던 자식이 아사직전에 돌아와 결국 죽었다는 부모의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군인들은 북한의 젊은 층이 아닌가. 군인들이 굶어가고 있다면 노약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구호활동을 하면서 북에 모니터링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군인들 먹이는 게 걱정돼 북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구호물자가 가장 밑바닥의 사람들에게 전달될 때까지 넘치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 여성신문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람의 생사는 이념 이전의 문제다. 사람을 살리는 일에 우리가 너무 야박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북한은 총체적인 재앙 속에 있다. 식량뿐 아니라 사회 모든 것이 마비돼있다. 그러한 사회가 사람이 살 수 있도록 복구될 때까지 우리는 어쨋건 도와야한다. 그 실상을 직접 보지 못하고 멀리 떨어져있는 것이 아쉽다. 만약 직접 눈으로 보게된다면 누구라도 북한주민들을 위해 발벗고 나서야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연락·02-587-8996 (www.jungto.org/gf)

후원·국민은행: 086-25-0021-251 (사)좋은벗들

조이 여울 기자 cognate@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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