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한 직장문화 만들기 회식문화를 바꾸자

회식(會食). 직장인들이 단순히 모여서 먹는 자리일 뿐 아니라 막혀 있던 의사소통이 자연스레 이뤄질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때로는 후배들에게 선배들의 업무경험과 노하우가 전수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순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폭탄주, 음담패설, 성희롱 등등 역기능에 대한 문제제기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 내에서는 어느 누구도 섣불리 회식문화의 문제를 거론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이런 성역화된 문화에 도전이 시작됐다. 여성과 남성들이 그 도전에 손을 잡고 있다. 여성민우회가 성평등한 직장문화 만들기 캠페인의 첫 목표로 삼은 회식문화 바꾸기 캠페인에 많은 남성들, 그리고 기업들이 참여를 선언한 것이다. 여성들을 힘들게 하는 현재의 회식문화가 남성들에게 전적으로 유리한 것만도 아니기 때문이다. 과음과 상명하복이 지배하는 회식자

리에서 남성들의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 역시 세계최고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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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를 맞추느라 끝까지 앉아있으면 대가 세니 어쩌니 하고 중간에 가면 분위기도 못맞추는 여자라고 낙인찍힙니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건지…”

회식자리는 뭐니뭐니해도 여성들에게 더 큰 스트레스를 준다. 술 따르기를 시키거나 폭탄주를 억지로 돌리는 것은 물론 음담패설이나 성희롱 등으로. 여성부 남녀차별 신고센터 상담전화에 따르면 성희롱이 일어나는 장소 역시 대부분 회식자리인 것으로 드러났다.

회식자리는 여성차별이 일상화되는 공간이다. ‘2차 이상’까지 회식자리를 함께 하는 남성들끼리는 서로 은밀한, 그러나 함께 참여하지 못하는 여성들에겐 닫힌 자리가 회식공간이었다. 향락업소에서의 2차 경험 공유를 통해 자신들끼리 공범자 의식이라 할만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남성들은 비공식적 의사소통이 회사 업무나 승진까지 좌우할 수 있는 직장 사회의 메커니즘에서 승자가 되기 쉽다.

이임혜경 민우회 여성노동센터 실장은 “임금차별이나 부당해고 등과 달리 회식자리에서의 남녀차별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고 운을 뗐다. “억지로 술을 강요하고 블루스를 출 것을 강요하는 등 여성동료를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문화만이 잘못된 게 아닙니다. 남성들도 여성과 마찬가지로 잘못된 회식문화의 피해자입니다. 회식약속을 일방적으로 통보 받고 억지로 술을 마시는 건 남성들에게도 고역이지요.”

여성부가 지난해 12월 직장인 성인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현재의 회식문화는 여성은 물론 남성들에게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직장인의 45%가 회식이 업무능률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했고 다음날 업무에 지장을 준다는 응답도 29%에 달했다. 남성들 역시 술 위주의 회식(29%)과 폭탄주 및 술잔 돌리기(23%) 늦은 시간까지의 회식(20%), 회식 참석에 대한 자율성 부재(15%) 등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이쯤 되면 한국 직장에서의 회식은 모여서 팀워크를 다지는 기회가 아니라 오히려 팀원들의 사기 저하, 해체를 불러올 수 있는 자리이다.

특히 ‘2차’로 통칭되는 단란주점, 룸살롱 등의 퇴폐향락업소는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공간이기에 문제가 된다. 이곳에서 여성들은 접대여성들이 남성동료들로부터 대상화되는 것을 구경하는 한편 자신들 역시 모임의 주체자가 되지도 못한다. 방문자와 접대자라는 서로 다른 두 부류의 여성들이 똑같이 남성들에 의해 주변적인 위치로 밀려나는 것이다.

민우회에 작년 한해 동안 접수된 500여건의 상담 사례 중 약 55%는 성희롱과 관련된 사안이다. 이 중 4분의 1 가량이 회식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식자리에서의 성희롱은 피해자인 여성에게 수치심을 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낯뜨거운 일들을 반복 경험한 여성들은 회식자리를 기피하게 되고 상사와의 비공식적인 의사소통이나 정보교환 등 회사 바깥에서의 관계 형성에서도 남성들에 비해 소외될 수밖에 없다. 이임 실장은 “자연히 인사고과나 승진 문

제에까지 남녀차별이 이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건전하고 평등한 회식문화는 술이 아닌 대화로 팀워크를 다지는 회식이다. 이를 위해 민우회는 온라인(bagguza.womenlink.or.kr)과 오프라인으로 회식문화를 바꾸는 남성 1천인의 실천선언을 받고 있다. 회식약속을 일방적으로 통보하지 않기, 억지로 술 권하지 않기, 술 따르기·끼워 앉히기·블루스 등을 강요하지 않기, 퇴폐향락업소에 가지 않기, 여성에게 분위기 맞추라고 요구하고 뒤에선 처신을 욕하는 이중적 사고를 하지 않기 등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민우회는 서명을 민우회에 제출하고 선언문은 책상 머리맡에 붙여놓고 사후다짐(?)이 가능하도록 배려했다. 현재까지 남성 직장인 150여명이 전향적인 이 선언에 참여했고 지난 3일 온라인 서명이 가능해진 뒤론 남성들의 관심이 부쩍 늘었다. 기업 차원에서 회식문화를 바꾸기 위한 서명도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 한국존슨(주)과 롯데상사, 코리아닷컴 등 20여개 기업이 서명에 참여했고 문화연대, 전교조 등 시민단체도 가세했다. 웹사이트를 방문하면 회식문화 개선에 동참해 달라는 웹카드도 보낼 수 있다.

회식문화에서 시작된 민우회의 평등한 직장문화 만들기 캠페인이 직장문화를 어떻게 바꿔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이박 재연 기자revival@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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