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대면한 멘토-멘티,

여성들간의 네트워킹 공감

서울대 법대 82학번과 00학번. 사시 31회 출신인 멘토 강정혜 변호사와 멘티 지효씨는 학교 선후배 사이다. 강 변호사 학번에서는 300여명 정원 중 11명만이 여성이었다. 그나마 최초로 법대 여학생 비율이 두 자리수가 된 때이기도 하다.

이에 비해 지효씨 학번은 약 290명 중 70명이 여성이다. 법대 여학생 수가 늘어나고 세월이 흐른 만큼 두 사람이 경험하는 대학생활도 많이 다르다. 그러나 사이버 상에서 만나오다 지난 9일 강 변호사가 일하는 법무법인 광장 사무실에서 첫 대면을 한 이들은 여성으로서 남녀공학, 법대, 법조계에서 부딪치는 문제들에 대해 많은 부분 서로 공감했다.

지효씨가 멘토링에 신청한 이유는 ‘여성들의 네트워킹’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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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멘티 지효씨, 멘토 강정혜 변호사

지효(이하 효): 법대 여학생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힘들어한다. 여자는 신입생일 때 제일 주가가 높다는 둥 이런 얘기만 들려오고…. 여자는 왜 못 모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92년도 법대 여학생회 사진을 보니 여행가서 술 마시는 모습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여학생회도 유명무실하고 모이는 일이 거의 없다.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고 싶었다.

강정혜(이하 강): 우리가 처음 여학생회를 만들었다. 11명 모두 극우에서 극좌까지 다양했지만 잘 모였다. 서로 노력하고 애썼기 때문인 것 같다. 중간에서 구심점이 된 한 친구의 노력도 컸다.

강 변호사는 법조계 여선배들을 찾아갔던 일 등 학부시절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그는 며칠째 계속된 업무로 당일 멘티와 만나는 시간도 여유있게 가지지 못했다.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멘토가 된 강 변호사가 생각하는 멘토는 무엇일까.

“정신과 의사도 매일 힘든 얘기만 들으니 다른 의사들과 서로 얘기하는 시스템이 있다던데 모든 관계는 주고받는 것 같다. 내가 물에 빠지면 젊은 멘티가 나를 일으켜 줄 수도 있다. (내가 도움을 주는 것 뿐 아니라) 멘티가 날 톡톡 틔워줄 수 있을 거다.”

강 변호사는 “아버지가 늘 세 사람이 함께 일하면 그 중에 반드시 스승이 있다는 ‘삼인행

필유아사’를 강조하셨다”며 “그래서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 배울 게 뭔지를 먼저 생각하고 살았다”고 한다. 단 한 명의 인생의 멘토를 꼽기보다는 자신이 접한 영화, 소설, 사람들이 모두 멘토였다는 것. 미국 영화배우 로버트 레드포드도 그의 일관된 삶의 태도 때문에 좋아한다. 강 변호사는 여성의 진출이 적었던 법조계에서 특별히 역할모델이 된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강: 거의 혼자 해왔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 자체가 무능력으로 여겨지지 않을까 하고 무의식적으로 두려움을 갖고 있었던 건지… 그러나 그게 아니다. 성장하려면 자신에게 부족한 점은 남에게 웃으며 달라고 해야 한다. 이게 어렵긴 하다. 돈 꾸러 가서 웃기 힘들듯이.

효: 역할모델이 된 분이 없으면 주목받는 일이 많았겠다.

강: 주목받았다기보다 긴장을 풀 수 없었다. 못하면 ‘여자라서 저렇다’ 소리 들을까봐 남자보다 배로 해야 했다. 역으로 생각하면 그게 강한 동기부여가 됐던 것 같다.

강 변호사는 자신의 경험을 돌이키며 지효씨에게 “밝게 살라”고 조언한다.

강: 나는 젠더 때문에 굉장히 억눌렸다. 내가 100을 가졌다면 고등학교 때는 100 이상을 했다. 펄펄 날았다. 능력만 있으면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학에 가니 주변에서 막 띄워주는데도 난 그냥 움츠러들더라. 말로는 표현이 잘 안되지만 자아에 대한 존중, 자아를 예뻐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효: 움츠러드는 이유에는 내부적인 문제 뿐 아니라 법대 전체의 남성 문화도 있다.

강: (웃으며) 여자들끼리 놀면 된다.

효: 여자끼리 네트워크를 만들면 내부적으로 뭔가 이상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강: 남자들은 자기들끼리 노는 게 기본인데 여자들에게는 그게 특별히 네트워킹해야 하는 일이 돼버린다.

지효씨는 “요즘은 다들 ‘내 한 몸 챙기기도 바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욱 법률 분야에서 여성들이 네트워킹 하는 방법을 알고 싶었다”며 “앞으로 얘기를 많이 듣고 싶다”고 밝혔다. 강 변호사는 지효씨에게 여학생회 시절 구심점이 된 친구를 소개시켜 주겠다며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송안 은아 기자sea@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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