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주제로 작업하는 미술가 백연수.

진부하게도 그가 조금은 새초롬한 채식주의자가 아닐까 생각했다. 혹은 귀여운 인상의 동물애호가거나. 어설픈 지레짐작을 뒤로 한 채 그의 개인전을 찾아간 건 그가 보내온 팜플렛 마지막 장에 실린 <나를 끌다>라는 작품 때문이다. <병아리를 끌다> <강아지를 끌다>, 그리고 <나를 끌다> 까지. 그 관계의 연관성이 몹시도 의미심장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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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의 동물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어느 날 생각해 보니 모든 동물들과 내가 너무나 다양한 위치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예를 들어 동물원에서는 관람자인 나와 완벽한 대상물인 동물, 집에서는 형제나 자매처럼 존재하는 애완견, 음식점에서 내 음식으로 이미지화된 돼지, 또한 다양한 동물 상품 캐릭터 등 말이에요. 여러 가지 방향으로 만나는 동물과 나의 관계가 흥미로웠어요. 관계를 찾아내고 작업으로 풀어내면 재미있겠다 생각했죠.”

동물과 ‘나’의 관계? 그렇다면 이야기는 좀더 복잡해진다. 그는 단순히 동물에 대한 사랑이나 보호를 웅변하는 것이 아니었다. 관계 안에는 ‘권력’이 존재하기 마련이고 권력을 말한다는 것에는 다분히 비판적인 시각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관계에 대한 시각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재미’를 넘어 예리한 주제의식이 숨어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얽힐 때쯤 그가 다시 입을 연다.

“제가 키우는 애완견 말이에요. 저는 물론 너무나 사랑하죠. 하지만 어찌 보면 애완견은 너무나 인간화된 삶을 강요받고 있잖아요. 동물답지 못하게 사는 동물인 거죠. 초등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도 아이들이 예뻐서 자꾸 만지다 보면 죽고.”

그는 인간본위의 욕망이 투영된 동물의 삶에 대해 고민하면서 많은 혼란에 빠졌다고 한다. 사랑과 욕망, 강요와 억압, 그 딜레마 속에서 수동적이고 기계적으로 다루어지는 동물의 모습은 기계화된 이미지로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담긴다. 그러나 동시에 그 역시 바퀴가 달린 초록빛 틀에 사진으로 넣어져 완벽히 기계화되어 수동적으로 대상화된다. <나를 끌다>라는 작품이 그것이다.

“제 주변의 동물들을 돌아보다가 어항 속의 열대어를 사진으로 찍는데 문득 제가 보이더라구요. 어항 유리에 비쳐서 말이에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하고 말이죠.”

문득 스친 이런 느낌이 마지막 작업인 <나를 끌다>로 귀결됐다. 그는 “사회 안에 놓인 모든 인간은 얽매여 있다는 것에 대한 표현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회 속에서 여성으로 사는 자신 역시 사회의 욕망에 의해 많은 제한과 억압을 받으며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대상화하고 있는 열대어의 어항에 비쳐 되돌아오는 자신을 보면서 사회 안에 ‘여성’으로서 존재하는 그는 “사회 안에서 나도 다를 게 없다. 때로는 병아리처럼 장난감이 되기도 하고 열대어처럼 관상용으로 전시되기도 한다”는 적나라한 현실인식에 직면한 것이다.

인간 본위의 욕망 투영된 동물 삶에 천착

그의 작업방식이 그렇다. 문득 스친 느낌은 다시 작업으로 환원된다. 그의 표현대로 그는 ‘생각하고 상상하고 섞여서’ 작업을 진행한다. 그는 “애초에 100%를 계획하지 않는다”고 한다.

“작업하면서 생기는 변수를 즐겨요. 모르는 부분이었는데 작업하면서 새롭게 깨닫게 되는 것들, 어디로 갈지 모르지만 가게 되는 곳. 그런 긴장감이 좋아요.”

아마 그것이 그의 작업의 매력인 것 같다. 그는 지난해 대학원을 졸업하고 처음 갖는 이번 개인전에서 역동적인 긴장감의 즐거움을 맛보았다. 그 즐거움은 한없이 그를 매료시켜 끊임없이 작업에의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한국사회 안에서 여성미술가로 선다는 게 쉽지 않으리라는 건 선배들을 보면서 진작 깨달았다.

“졸업한 지 얼마 안돼서 현실에 대한 확실한 감은 없지만 여자 선배들을 보면 얼추 방향이 그려져요. 정말 심한 삼각형 꼴이에요. 갈수록 작업을 안 하게 돼요. 여성의 경우는 결혼, 경제력, 가정, 육아 등의 문제가 걸리게 되는 거죠. 그런 현상의 거듭되는 반복을 보면서 정말 쉽지 않구나 하는 현실을 느껴요.”

여성주의 미술가인 바바라 크루거와 루이즈 브루주아의 작품에 묻어나는 작가의 손때와 치열한 고민이 맘에 든다는 그는 여성들이 공동작업을 하며 서로 힘을 주는 기회가 많았으면 한다면서 앞으로도 작품과 끊임없이 씨름하며 생각을 넓히고 또 다시 확장된 고민을 작품에 담아내고자 한다.

문이 정민 기자 knnif@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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