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예술을 보존하는 것은 한 그루 나무를 키우는 것과 같다. 스승으로부터 전수받은 도살풀이춤을 올곧게 보존하는 게 내 일생의 목표다.”

살풀이춤의 원형 전수론을 펴는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도살풀이춤 보유 지정예고자 양길순씨(49). 그녀는 지난 달 27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 기념 <양길순, 춤 소리 그 신명> 공연을 선보이며 그녀의 춤 반백년 인생을 정리하는 기회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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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바로 전날 문화재청은 11년 전 작고한 양씨의 스승이자 도살풀이춤의 대가 김숙자 선생 이후 10여년 간 자리가 비어있던 도살풀이춤 보유자로 양씨를 지정예고했다.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운은 스승이 제자의 앞길을 살펴보고 있기 때문일까.

- 감회가 새로울 텐데…

“1976년 선생님이 일본공연을 오셨을 때의 전율은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선생님의 살풀이춤을 보고 바로 무대 뒤로 쫓아가 제자 되기를 자청했지요. 이후 후두암으로 세상을 뜨실 때까지 14년 간 선생님과 먹고 자면서 친딸처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배웠어요. 생계는 돌보지 않았던 선생님 수발을 들다시피 했지요. 사람들이 내가 도살풀이춤을 추면 선생님이 살아 돌아온 것 같다고 수군거려요. 살풀이춤을 출 때는 ‘항상 선생님이 위에서 지켜주시겠지’ 하고 믿고 무대에 섭니다.”

결혼과 더불어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국땅에서 처음으로 스승을 만났던 양씨의 눈가로 살짝 이슬이 맺혔다.

- 살풀이춤의 어떤 점이 매력인가

“경기도당굿에서 흘러나온 도살풀이춤은 전라도 지방 살풀이춤보다 여성적인 몸짓입니다. 춤사위가 우아하고 느려서 정적이지요. 도살풀이춤에서 쓰는 수건은 살풀이춤보다 길고 목젓놀이(목과 팔을 움직여 끄덕끄덕하는 동작)도 훨씬 길어요. 자연히 더 흐느낌이 있고 끊었다 펴는 동작이 유장합니다. 살풀이를 추면서 눈앞의 관객도 잊게 되고 추고 나면 가슴속이 다 후련한 걸요. 관객들도 나에게 동화돼 눈물을 글썽이면서 무대 뒤로 찾아올 때면 함께 부둥켜 운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에요.”

- 양씨의 도살풀이춤엔 은근한 부드러움이 배어있는 것 같다. 스승의 춤세계와 다른 점이 있다면…

“평생 일신은 돌보지 않고 산 선생님의 춤에는 엄숙하되 과장되지 않는 카리스마가 있었어요. 항상 ‘배가 고파야 참예술이 나온다’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선생님이 준비없이 돌아가시기 전까진 마냥 예쁘게 추는 춤이 좋은 줄 알았어요. 그러나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에 뒤늦게 한이 생겼나봐… 이제 나 역시 오장육부를 끊는 춤이 무엇인지 몸으로 이해한다니까. 선생님이 악에 받쳐 추시던 춤에 좀 더 근접한 것 같아…”

-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악사에 대한 문화재 지정이 시급한 실정이에요. 전통춤은 춤꾼과 악사, 구경꾼이 어우러져 교감하는 장르인데 점점 춤과 음악이 따로 놀고 있어요. 악사가 춤꾼의 몸짓을 살려줘야 하는데 이론교육만으론 불가능하죠. 춤꾼과 악사를 하나로 보는 시각이 필요한데 말야…”

일본에선 기능문화재마다 소품 다는 기능, 분장하는 기능 하나하나가 별도의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며 문화정책이 마냥 경직된 시각에 머물러선 안된다고 일침을 놓는 춤꾼 양길순, 그녀는 자신의 살풀이 사위로 사람들 가슴속의 매듭을 풀어주고 함께 신명을 누리는 경지에 오르고 싶은 듯하다.

이박 재연 기자revival@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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