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은 남성적인가, 아니면 남성성은 폭력적인가.

이런 어리석은 질문들을 몇 번이고 곱씹어본다. 치고 박고 싸우고 맞고 때리는 1차적인 폭력 외에 군사문화, 가부장제, 성매매, 학벌주의, 성차별 등 착취와 억압의 구조는 더 큰 폭력을 보여준다.

‘남성적=폭력적=가부장적’이라는 통념은 이런 구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군인, 전경, 아버지(호주)는 특히 억압적 폭력의 상징으로서 나타난다. 또 학교, 군대, 동아리, 각종 기업, 가정에서 상하 수직관계, 절대적 복종, 차별과 폭력이 아무렇지 않게 혹은 은연중에 드러나고 있다.

나는 학교에서 남자가 남자로서 자라나고 여자가 여자로서 자라나는 현실을 본다. 이 현실은 다양성을 배제하고 주어진 한 가지 성을 받아들일 것을 강요한다. 더구나 그 강요의 방식은 매우 폭력적이다. 어제는 남학생들이 몹시 심하게 맞았다. 열 명 정도 되는 학생들이 남자교사에게 뺨을 맞고 얼차려를 하고 여학생반 앞에서 열을 맞춰 오리걸음을 하며 입으로는 선생을 욕하고 있는 ‘모습’이 내 눈에 밟혔다.

“저건 너무 심하지 않니?”

고요한 복도에서 뺨때리는 소리와 ‘ㅆ’ 들어가는 욕이 지나가는 사람을 돌아보게 할 정도였다.

“글쎄. 당연해. 남자애들은 저렇게 맞아야 정신차린다니까. 쟤네들은 저 정도쯤 아무렇지도 않아. 저 선생. 여자애들은 안 때리잖아. 그러니깐 우린 신경 안 써도 돼.”

아무렇지 않은 폭력. 정말 아무렇지 않은 폭력. 아무렇지 않은 폭력을 당한 그 남성들이 다시 그 아무렇지 않은 폭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언뜻 보기에 지금 당장은 단지 ‘여학생이라서’ 폭력의 구조에서 벗어나 있는 듯 보이는 여성들은 사회에 나간 다음에는 ‘여성이라서’ 더 큰 기회비용을 부담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여자들이 군대 갔다왔냐?”

“여자들이 그렇게 맞아봤냐?”

폭력의 남녀차별 운운하는 남성집단에 의해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더 큰 폭력의 희생자가 되는 것은 아닌가. 마치 여성과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이 구조는 결국 여성을 사회에서 배제시키는 촉매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들은 폭력을 통한 끈끈한 유대관계,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암묵적인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판이나 성매매 문제에서나 여성이 항상 소수자의 입장일수 밖에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폭력적인 연대구조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이경영 사건만 해도 백지영 사건과는 분명 달랐다. 사생활을 비판받은 연예계 여성들은 완전 매장됐다. 반면 이경영의 경우 정치적 폭력으로 대변되는 주요 언론사가 ‘상대 여성의 문란한 사생활’을 폭로해 줌으로써 정당한 가해자, 아니 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했다.

사실 여성들은 그렇게 약하지 않다. 그러나 사회적 폭력에 의해 공격받는 여성들은 약할 수밖에 없다. 여성들은 근거없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게 아니다. 그러나 사회적 폭력은 여성에게 피해를 입히고 그것에 대해 분노하는 여성들은 피해의식을 가진 여권론자로 전락한다.

폭력은 남성적인가, 남성성은 폭력적인가.

나는 남성성 자체가 폭력적이라기보다는 폭력이 남성적인 것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성들 역시 폭력에 의해 ‘남성다움’을 강요받은 희생자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성들은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세상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들을 향한 보이지 않는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한사람 한사람으로서의 남성은 폭력적이라고 할 수 없지만 분명 사회조직으로서의 남성들은 폭력적이기 때문이다.

장강 혜령·jainey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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