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말 새마을 운동이 온 나라를 굳건히(?) 만들던 시기에 나는 말라깽이 여중생이었다. 절약정신으로 투철하게 무장된 어머니 덕에 제 사이즈보다 두 배쯤 큰, 헐렁한 교복을 입고 중곡동부터 학교가 있는 망우리까지 버스로 통학을 했다. 그 당시만 해도 버스에는 하늘색 옷에 깜찍한 베레모를 쓴 차장 언니들이 있었다. 나중에 버스 안내양이라는 호칭으로 승격(?)이 되었지만 매일 아침저녁으로 만나는 언니들에게 버스 안내양이라는 호칭보다는 차장언니라는 호칭이 더 정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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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번, 205번? 언제나 같은 버스로 통학하던 터라 눈에 익은 언니가 있었다. 유난히도 창백한 얼굴, 가는 목. 콩나물 시루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아침버스는 검은 색과 하얀 색 일색이었다. 지각하지 않으려고 앞문에 발 하나를 걸치고 동동거리는 우리의 등을 사정없이 밀어주었던 차장 언니. 남학생들 사이에 끼어 무거운 가방을 주체하지 못하는 나를 보고 문 기둥 난간에 가방을 얹어줘 내 숨통을 틔어주었던 언니. 그 언니의 나이가 나보다 한 두 살이나 많았을까?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친구들과 조잘대며 웃고 떠드는 사이 문기둥에 몸을 기댄 채 졸던 언니의 모습, 그 모습이 왠지 마음에 걸렸다. ‘저러다 넘어지면 어떻게…’

당시 하얀색 포장지의 스피아민트 껌은 포장지의 디자인과 맛에서 세련됨이 느껴져 여학생들 사이에 인기였다. 하기 싫은 공부를 하다 깜빡 졸 때면 껌을 씹으며 잠을 쫓았던 나는 가방에 늘 껌 한 통쯤은 가지고 다녔다. 어느 날 내려야 할 정거장에 도달했을 즈음 여지없이 또 졸고 있는 언니를 보며 문 앞으로 다가섰다.

“어? 본 약국 앞입니다. 내리실 분~~”

“언니 회수권 여기요.” 나는 회수권과 함께 스피아민트 껌을 내밀었다.

“어? 이거…”

“언니 졸릴 때 씹으세요.” 나는 재빨리 버스 계단을 내려갔다.

차창 너머 환하게 웃는 모습엔 어딘지 모를 고단함이 배어 있었다. 나 혼자 좋은 것을 다 갖고 있는 것 같은 미안함.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 언니의 하얀 얼굴을 닮은 껌을 주는 일 뿐이었다.

강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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