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빛 우주공간.’

여성주간을 맞이해 여성부에서 운영하는 7호선내 문화열차, 위민메트로에 대한 첫 느낌이 그랬다. 첫칸의 차창이 온통 보라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내 옆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던 한 할아버지는 문이 열리자마자 멈칫하더니 놀란 눈으로 옆 칸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럴만도 한 것이 열차 안은 형광빛을 띤 색색의 띠가 천장과 바닥, 창을 지나가고 있었고, 형광등이었던 천정등은 보라빛 할로겐 등으로 설치돼 하얀색 옷을 형광빛으로 빛나게 하고 있었다. 앉아 있는 사람이나 서 있는 사람이나 서로의 옷을 보고 한마디씩 하며 일상 속에서 얻은 작은 충격을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21-1.jpg

형광 띠를 따라 앞으로 더 나아가니 앞 벽면에는 커다란 시계판이 설치돼 있었다. <시계는 아침부터 똑딱똑딱>이라는 제목의 설치작품을 만든 방효정 작가는 자신의 글에서 ‘수동적이거나 정체된 여성의 모습이 아닌 세상에 당당한 주인공인 여성의 모습과 그들이 만들어 가는 새로운 역사의 기록을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여전히 여성을 강조하는 어조나 글은 싸잡아 ‘페미니즘’이란 틀 속에 가두고 -이때 페미니즘이란 명백하게 비꼼의 의미- 평가절하하고 싶어하는 우리 사회 분위기에서 남녀노소가 자유롭게 이용하는 대중교통을 이용한 전시는 더욱 특별한 경험일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다음 칸으로 넘어가자 벽면에는 학부모회의 가는 아빠, 힙합 바지 사주는 엄마(평등가정 라이프 스타일), 가정폭력, 성폭력 등 평등, 인권, 인력개발에 관한 내용의 글들이 액자에 담겨 승객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마지막 칸에는 조미영 작가의 <부엌에 관한 즐거운 상상>이라는 작품이 설치돼 있었다. 부엌을 열차 안으로 옮겨 놓은 듯 예쁜 천으로 만들어진 커튼과 식기들, 주부와 가장 가까운 고무장갑이 값비싼 액세서리처럼 액자에 담겨 있었다. 한 쌍의 젊은 연인은 무엇이 궁금한지 이것저것 들여다보며 마치 자신들의 미래를 꿈꾸는 것만 같았다.

해도 해도 끝이 없고 아무리 열심히 쓸고 닦아도 티가 나지 않는 집안일. 그중 가장 오래 여성의 시간을 붙들고 있는 부엌이라는 공간이 새삼 낯설게 느껴지는 건… ‘가정 속에서 평등문화를 실현하고 성 역할에 관해서 문제제기를 하고자 했다’는 작가의 말에 반발하고픈 남성들도 있을 것이다. 식기세척기까지 사주는 세상에 가정 속의 평등문화는 또 무엇이냐고 말이다.

언제나 틀이 문제 아닌가. 잘못 성형된 틀 안에서는 온전한 그릇이 나올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아직도 딸을 낳으면 섭섭하고 아들을 가진 여자는 보다 더 포만감을 느낀다. 아직도 직장 내에서의 여성의 발언은 발칙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열차 한쪽에 꽂아 둔 여성주간 안내문을 뽑아 쥐고 문을 나서는 젊은 여성의 당당한 발걸음이 오늘따라 더욱 상큼하다.

윤혜숙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