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의상이 다분히 정치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 이견이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리고 옷이라는 것은 한 인간의 상당한 부분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임이 틀림없다.

예로부터 남성복은 자신의 사회적 위치나 캐릭터를 표현하는 반면 여성복은 배우자의 지위 또는 여성성의 표현으로 인식돼온 것이 사실이다. 여성복은 자신을 표현한다기보다 남성의 눈에 읽히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여성들의 여성복 브랜드 선호도를 보면 알 수 있다. 단아하고 깔끔한 이미지의 브랜드는 거의 순위의 변동없이 높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반면 다소 소녀적이고 튀는 이미지의 브랜드는 순위의 변동이 아주 심하다. 심할 경우에는 한 시즌이 지나면 브랜드 자체가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이런 현상은 여성들 자체의 기호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대중매체나 사회에서 정하는 여성상의 기준에 부합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연령대별 브랜드 선호도 조사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10대, 20대 사이에서는 어느 정도 개성있는 브랜드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20대 중반쯤 되면 소비자들은 심플한 스타일의 브랜드로 이동해간다. 그리고 의류브랜드 자체도 이런 현상을 바탕으로 주고객의 연령층을 정한다. 이런 현상은 20대 중반이 되면서부터 여성들이 사회생활을 하는 것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여성들의 보여지는 부분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노골적이다. 그래서 여성들은 사회에 나가기 전 졸업사진에서부터 면접을 볼 때 직장생활을 할 때도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된다. 이와 같은 외모에 신경쓰기는 거의 생활이 되고 그리하여 학교를 다닐 때는 개성있었던 언니도 사회 나가면 별 수 없다는 소리를 듣게 하는 것이다. 물론 주위의 시선에 전혀 신경을 안 쓸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내가 좋다고 해도 몸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고 거리를 나서거나 대충 속옷만 걸쳐 입고 거리를 다닌다면 그것은 남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이기 때문에 자제해야 하겠지만 그런 시선의 주객이 전도돼 남의 눈을 불편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또는 남의 눈에 맞추기 위해서 우리가 옷을 입는 순간 옷은 정치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선택받기 위해 옷이라는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현재 패션 트렌드는 여성들을 사회적 시선에서 해방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별로 없는 듯하다. 다소 실험적인 의상이 등장하긴 하지만 결국 영광을 차지하는 것은 사회에서 추구하는 여성성을 표현해줄 수 있는 의상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패션의 노예가 되기에 나의 취향은 너무 소중하다. 나도 사회적인 시선에서 해방되는 그 위치가 가끔은 헷갈리기도 하지만 사람은 나름의 취향이 있고 나름의 생각이 있기 마련인데 어째서 여성들은 깔끔하고 심플한 옷차림을 강요당해야 하는 건지. 솔직히 그런 옷들은 아무리 좋아 보여도 일부러 거부하고 싶을 만큼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나의 자유를 사회적 시선 밑으로 굴복시켜 거기에 맞춰야만 한다는 것은 나에게 엄청난 강

요이며 폭력이다. 내가 입는 옷들은 소위 말하는 여성스러운 스타일도 있고 ‘싸 보이는’ 스타일도 있고 남들이 보기에 전혀 ‘아닌’ 스타일도 있지만 내가 입고자 하는 옷을 입고 남이야 뭐라 한들 자신있다면 그것은 여성주의자적인 옷 입기가 아닐까.

매일매일 입어야 하는 옷에 그런 정치성을 부여한다는 것이 나로서도 너무 괴롭지만 아직도 만연해있는 여성스러운 옷 입기를 거부하고 여성주의자적인 옷 입기를 일부러라도 실천해야한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내가 너무 민감하기 때문일까.

김경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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