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언/호주제폐지를 위한 시민의 모임

법이 우리에게 큰 불편이나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우리는 신경쓰지 않고 살아간다. 무릇 법이나 제도는 우리의 삶에 있어 중요하지만 우리들이 존재감을 느끼지 않고 그 법이나 제도의 영향 아래서 ‘편하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마치 공기처럼.

호주제로 대표되는 한국의 가족법은 수차례 개정을 거쳤다(예외조항을 만들면서). 어떤 분들은 호주제가 이제 뭐가 문제냐고, 호주는 더이상 아무 권한도 없는 빈 껍데기일 뿐이라고 말한다.

물론 호주의 권한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가족법이 제대로 개정됐다면 앞에서 언급했듯이 호주의 권한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호주제의 존재감을 느끼지 않고 그 영향 아래서 ‘편하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아니 적어도 그 영향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줄어들어야 하고 개정된 그 제도로 인해 피해를 받는 사람이 사라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 법을 제대로 개정한 것 아닌가.

하지만 불편하다는 아우성이 더 커지고 있으니 이상한 노릇이다. 이혼·재혼 등 다양한 가족형태가 늘어나니 호주를 중심으로 호적이 편재되는 부가입적은 매우 불합리한 제도가 돼버리고 말았다. 국가 행정이 실질적인 부양·피부양 관계를 기준으로 해야 하는데 호주를 기준으로 한 부모와 아들부부로 각종 사회복지, 세금 문제를 처리하니까 우리 몸에 어울리지 않는 옷처럼 법과 현실의 괴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호주제 문제가 단순히 호주승계나 호주의 권한문제로 치부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란 말이다.

이제 이런 질문을 한다. 자신들은 호주제에 아무런 불편함을 못느끼는데 왜 이런 짓을 하냐고 말이다. 왜 하냐고? 솔직히 얘기한다면 ‘잘살고 편하게 살고 싶어서’ 하는 거다.

인간이라면 자신의 존엄을 무조건 존중받아야 한다. “말도 안되는 이유”로 공적인 차별을 받는다면, 존엄이 훼손당한다면 그것에 저항하고 자신의 존엄을 되찾을 수 있어야 한다. 호주제 폐지론자들은 호주제에 아무 불편함을 못느끼는 사람들에게 어떤 감정도 없다(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들의 양심이니까). 악의적으로 훼방놓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덧글: 마땅한 권리찾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자신과 관련없다면(관심없다면) 신경 안쓰면 된다. 꼴보기 싫다는 이유로 훼방은 놓지 마라. 당신들에게 공적인 차별이나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당신들의 훼방은 꼴불견에 지나지 않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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