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종로서적이 최종 부도처리 됐다는 소식을 듣고 왠지 오래된, 이젠 추억 속에서만 아련하게 물무늬를 만드는 연인의 소식처럼 가슴 한켠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종로서적’ 그 이름만으로도 불러낼 시절의 그림이 많은데 이제 우리 곁을 떠나려 하는 것이다.

묵향까지는 아니더라도 젊은 시절 책에 묻혀 책의 향기를 좇던 사람이라면 종로서적의 나선형 계단을 무던히도 넘나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장마가 시작되는 날이면 동네 책방에서 구할 수 없는 책을 찾아 종로서적으로 달려가곤 했었다. 그 시절 을지문화사, 범우사의 문고판 책으로 만났던 도스토예프스키, 카프카, 나도향, 이상, 페이터의 산문, 전혜린, 릴케, 루이제 린저는 단돈 500원으로 하루를 살았던 학창시절을 더없이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보물들이었다.

종로서적 앞에는 친구와 연인을 만나려는 사람들로 북적댔고 그 틈을 넘어 긴 계단을 하나 하나 올라갈 때 내 시선에 잡혔던 많은 책들. 좋아하는 책, 읽고 싶은 책만 봐도 가슴이 콩콩 뛰고 배가 부르던 그 시절의 종로서적을 사오십대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1990년대 들어 교보문고가 광화문에 대형매장을 갖춘 후 종로에 또 다른 대형매장 영풍문고가 들어서면서 종로서적은 큰 위협을 받게 됐다. 넓은 매장과 각종 행사 서비스로 고객을 끌어들이는 대형문고의 공격에 종로서적의 입지는 작아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907년 예수교서회가 지금의 건물 위치에 있던 목조 기와집을 구입, 본격적으로 기독교 서적 출판과 판매 업무를 시작하면서 종로서적의 역사적 배경이 됐고 1931년 국내 최초 엘리베이터를 갖춘 빌딩을 짓고 ‘교문서관’이라는 상호로 독립경영을 했다. ‘종로서적센터’라는 이름은 1963년 점포를 현대화해 비로소 한국의 대표적인 서점의 지위를 얻게 되면서 사용한 것이다.

2007년이면 종로서적이 100주년을 맞는다고 한다. 5년여의 시간을 앞두고 종로서적이 문을 닫으려는 것이다. 지금 출판 관계자들과 각종 문화단체에서는 ‘종로서적 살리기 국민주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제3의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국민 스스로의 힘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는 월드컵의 열기에 가려져 국민주운동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한다. 근처 대형 서점에 비해 협소한 공간과 접근이 불편한 종로서적을 다른 장소로 옮길 계획도 논의되는 것 같다. 분명 편한 것이 좋다. 다리품 덜 팔고 주차하기 편한 곳을 우선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유럽의 오래된 유적들, 지역에 의미 있는 건물들을 그 지역의 자치단체에서 돈과 시간을 들여 관리하고 지원하는 것을 보면 남다른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새로운 것, 편리한 것만이 아니라 우리 역사와 함께, 추억과 함께 늙어가는 종로서적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그것을 보존할 여유를 기대하는 것이 우리 땅에서는 불가능한 것일까.

윤혜숙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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