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숙/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choks@ewha.ac.kr

나는 학부에서도 정치학을 공부했다. 미팅에만 나가면 항상 들었던 소리가 “정치학 공부하는 사람처럼 생기지 않았네요”하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이 말을 꽤나 좋아했다. 남성처럼 우락부락하지 않으니 얌전하고 여성미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정치학을 공부하는 나까지도 정치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지 못했으니 일반인들이 정치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정치학만큼 일상의 삶과 밀접한 학문도 드물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고 할만큼 우리의 삶은 정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나는 대중 강의에 나갈 때마다 청중들과 내기를 한다.

“정치와 상관없는 우리 삶의 예를 하나만 들어 보세요.”

청중들은 머리를 쥐어짜면서 도전을 한다.

“사랑이요” “건강이요” “자녀 교육이요” “부부 싸움이요”

자신있게 말하건대 나는 이 내기에서 단 한번도 져본 적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같이 살 방 한칸이 없어서 결혼을 못한다면 이는 국가가 책임져야 할 일입니다. 정부가 임대주택을 보급하고 무주택자에게 값싼 이자로 융자를 해준다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지요.”

“어떤 약을 의료보험 대상으로 지정할 것인지도 정치적인 문제입니다.” 등등 나의 대답은 끝없이 이어진다. 청중들은 정치가 삶의 거의 전부를 좌우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새로운 충격에 휩싸인다.

나는 현재 신도시에 살고 있는데 한 학부모에게 이번 지방선거에서 꼭 투표를 하라고 했더니 “나는 원래 정치 같은 것은 관심이 없어요”라고 응답한다.

“이 도시의 공무원 중에는 토박이가 많대요. 이들은 주민들의 문화공간을 짓는 것보다는 농지에 수로를 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답니다. 수로공사를 위해 토지를 매입할 때에는 땅주인인 토박이들의 이해를 고려해서 비싼 값으로 매입한대요. 그러니 시민들의 세금이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것이지요. 우리 시의 재산세가 강남의 압구정동보다도 비싼 이유를 이제 아시겠어요?”

이쯤 되면 “정치란 게 그런 거였어요? 무지 가까운 데 있네”하는 소리가 절로 터져 나온다.

요즘 월드컵 열기로 온 국토가 들썩인다. 나도 물론 이 열광적 축구팬 중의 하나지만 정치와 축구를 비교하면서 축구는 칭찬하고 정치는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칼럼에 대해서는 분노를 느낀다. 이런 칼럼이 정치불신을 부추기는 주범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중 배재대학교 김욱 교수의 비유는 매우 공정하다고 생각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치를 싫어하는 이유는 그동안 우리 정치인들이 정치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국가대표 축구팀이 역대 월드컵에서 별로 국민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이유도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한국축구가 갑자기 몇 단계 업그레이드되면서 국민의 폭발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반대로 국민의 성원과 응원이 열화와 같자 한국축구팀이 예상을 뛰어넘어 더 잘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정치에 대해서도 국민이 애정과 관심을 갖는다면 축구처럼 잘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일반인들이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갖기가 쉽지 않다는 데에 있다. 정치에 대해 지식이 없는 사람은 정치에 대한 흥미를 느낄 수가 없다. 여고시절 클래식 음악 감상문을 쓰는 숙제 못지않게 국악감상을 하는 것이 내게는 큰 고역이었다. 하지만 유학시절 사물놀이를 배우고 난 다음부터는 우리의 가락이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마찬가지로 정치를 좋아하기 위해서는 정치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러나 민주시민이 되기 위해 필요한 교육을 어디에서도 시키지 않고 있다. 과거에는 정권홍보의 차원에서 대학에서 국민윤리를 필수로 가르쳤지만 지금은 이도 사라지고 없다. ‘미국정부론’을 필수로 가르치는 미국 대학과는 대조적이다. 게다가 우리 국민은 정치에 대해서는 다들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 매스컴에서도 성교육은 해도 정치교육은 하지 않는다. 결국 국민들의 정치불신과 무관심이 만연하게 되고 그 결과는 부정부패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정치인은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인간은 원래 감시받지 않으면 권력을 이용해 사적인 이익을 챙기게 되어 있다. 따라서 정치인들이 알아서 국민을 위해 일해주기를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은 없다. 결국 민주사회에서 국민의 역할은 정치인이 권력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감시하는 것이다.

특히 여성은 남성보다 본성적으로 정치에 대한 기피증과 혐오증이 더 심하다. 정치를 싫어하는 것이 마치 자신의 높은 교양수준을 반영하는 것처럼 당당하게 말하기도 한다. “나는 정치 싫어”라고.... 나는 이런 사람은 투표권을 가질 자격이 없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정치에 대해 무관심한 것은 민주시민으로서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이제 억지로라도 정치에 관심을 가져보자. 그것이 한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의무다. 더 나아가서 정치 모르면 여성운동 백날 해봐야 헛수고다. 정치는 우리 삶의 모든 것을 최종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내가 정치이야기를 연재하기로 결심하게 된 것은 <여성신문> 독자들이 언젠가는 나처럼 이렇게 말하게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에서다.

“나는 정치가 넘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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