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불이익도 남녀동수 공천 강제에 역부족

프랑스 유권자들 여성보다 남성후보 선호해

지난 6월 9일, 16일에 있었던 프랑스 국회의원 선거는 40%의 유권자로부터 외면당한 채 우

파의 압도적 승리로 끝났다.

또 ‘남녀동수공천법’의 적용에도 불구하고 여성후보에게 국회 문턱은 여전히 높기만 했다.

선거 기권율은 프랑스 제 5 공화국 탄생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1차투표보다 2차투표의 기권율이 좀더 높아 39.71%에 달했다. 4천1백만 유권자 중 약 1천7백만이 선거를 외면했다는 뜻이다. 선거에 불참한 계층은 주로 서민, 젊은이, 좌파 경향의 사람들로 그동안 좌파 정부가 이끈 정책에 대한 불신이 선거 무관심을 낳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선거는 우익의 승리로 돌아갔다. ‘절대 다수’를 뜻하는 하원의 289석을 넘어 우파가 획득한 의석은 무려 399석이다. 특히 ‘대다연(대통령 중심 다수당을 위한 연합)’이 355석을 얻음으로써 시라크 대통령은 다른 우파정당 도움 없이도 강력한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는 독자적 기반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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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좌파는 사회당 공산당 녹색당이 각각 140석 21석 3석을 힘겹게 얻어내 178석에 그쳤다. 특히 사회당은 1997년 선거에서 획득한 의석 수의 절반에도 이르지 못했다. 한편 르펜의 ‘민족전선’은 단 한명의 국회의원도 당선시키지 못해 프랑스 국회는 일단 성장하는 극우 세력에 빗장을 걸 수 있었다.

이번 선거에서 무엇보다도 주목할만한 것은 ‘남녀동수공천법’의 실효성 여부다. 577명의 하원 가운데 여성의원은 72명으로 전체의 12%를 조금 넘는다. 남녀동수공천법이 적용되지 않았던 1997년 선거에서 여성의원이 63명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법안이 여성후보의 당선에 큰 기여를 하지 못한 것 같다.

사회당이 주도해 2000년 6월 6일 결실을 맺은 남녀동수공천법은 프랑스 정치에서의 과도한 성비(性比) 불균형에 대한 자각의 산물이었다.

역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성의원 비율은 1958년에 1.38%, 1967년에 2.26%, 1978년에 4.07%, 1993년에 6.06%였고, 1997년에는 11%에 조금 못 미쳤다. 여성의원 비율이 지속적으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유럽연합 회원국들에 비하면 프랑스는 그리스 다음으로 여성의원이 적은 나라이다. 여성의원 비율이 평균 40%에 이르는 북유럽 국가들에는 턱없이 못 미치는 실정이다.

국회의원 선거에 남녀동수공천법이 적용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선거 1차전에서 여성 입후보자의 수는 전체 후보의 38.5%에 이르렀다. 하지만 ‘대다연’의 여성후보는 불과 20%, 남녀동수공천법 제정을 주도했던 사회당 역시 50%에 훨씬 못 미치는 36%의 여성후보를 내세웠을 뿐이다. 재정적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본지 677호 참고) 당선이 유력시되는 후보를 선호했기 때문이다. 반면 극좌 및 극우 정당들은 거의 50%에 이르는 여성 입후보자를 냈다.

2차전의 여성후보 비율은 다시 24%로 줄었으며 최종 당선된 여성후보는 12%에 그쳤다. 우파의 여성 당선자는 10%를 겨우 넘겼고, 사회당은 16.42%, 공산당은 22.22%였다.

결국 프랑스 주요 정당들은 재정 손실에도 불구하고 승산 없는 여성후보보다는 승산 있는 남성후보를, 유권자들은 좌파보다는 우파, 여성후보보다는 남성후보를 택했다. 남녀동수공천법은 높은 현실의 벽에 부딪쳐 실효성 발휘에 실패했다. 이번 선거 결과는 남녀동수공천법의 실효성 논쟁에 불씨를 당길 것 같다. 또 우익이 절대다수인 국회는 이 법안을 원점으로 되돌릴 수도 있을 것이다.

황보 신/프랑스 통신원- 몽펠리에 3대학 철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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