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복도에 쿵쾅쿵쾅 울리는 발자국 소리! ‘셋, 둘, 하나…’

여지없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넘어질 듯 불안한 걸음걸이로 수민이가 들어온다. 정서장애 성향을 갖고 있으면서 정신지체인 수민이는 올해 처음으로 우리 반인 개별학습실(특수학급)에 들어온 여학생이다. 우리 반은 남학생이 많고 여학생은 오로지 수민이 혼자다. 항상 인사 잘하고 아침에 교실문을 열고 들어오면, “나, 최○○네 선생님 사랑해요. 선생님도 나 사랑하죠? 나 다 알고 있어…” 이렇듯 고백 아닌 고백을 하는 수민이는 참 밝고 맑은 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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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이 불면 사람의 마음에도 바람이 이는 걸까. 어느 날 아침, 헐레벌떡 바삐 뛰어오는 경석이는 누가 보더라도 전할 말이 있는 게 분명했다.

“선생님, 선생님. 저가요, 어제 병철이네 집에 놀러 갔는데요. 수민이랑 병철이랑 같이 누워 있었어요… 뽀뽀도 했대요.”

경석이는 어눌한 말투로 전날 보았던 사건을 일일이 설명하기에 바빴다. 상황에 대해 정확한 설명을 듣기 위해 수민이가 개별학습실에 오는 시간을 기다렸다. 수민이가 들어오자 차근차근 전후 사정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수민아, 어제 학교 끝나고 뭐 했니?” “나, 놀아써요.”

“그럼, 누구와 함께 놀았니?” “병철이하구, 숙제하구…”

“그래. 우리 수민이, 친구네 집에서 숙제했구나. 그럼, 숙제 끝나고 뭐 하고 놀았는지 말해 줄 수 있니?”

이 말에 곤란한 질문을 할 때면 늘 그랬듯이 TV프로그램 얘기며 오늘 엄마와 백화점에 가야한다는 등의 말로 대답을 피하고 있었다. 잠시 후 수민이는 한동안 내 눈을 빤히 바라보더니 “…걔가 먼저 누워 있자고 해써”라며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위의 사례는 내게 장애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이 여느 과목 못지 않게 중요함을 새삼 느끼게 해주었다. 자기 스스로를 보호하고 변호할 능력이 부족한 정신지체 아동들에게, 어찌 보면 너무나 솔직하게 반응하는 우리 아동들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줘야 할지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우선 수민이의 경우처럼 같은 반 남학생과 스킨쉽(skin ship)을 하고도 그저 ‘단순한 놀이’쯤으로, 아니면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행동’으로 한번 인식해 버리면 우리 아동들의 특성상 고치기가 매우 힘들어진다.

따라서 저학년 때는 자신의 몸에 대한 바른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꾸준한 반복학습을 통해 자기보호 능력을 기르도록 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몸을 만지면 “안 돼” 또는 “싫어요!” “안돼요” 등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말을 연습시킨다.

또한 남자와 여자를 올바로 배우는 성교육의 기본적인 목적을 생각해 볼 때 성교육은 화장실에서의 용변훈련부터 시작된다. 남자는 남자 화장실로, 여자는 여자 화장실로 따로 들어가는 일, 변기에 앉을 때까지는 옷을 미리 내리지 앉고 차례를 지키며 서 있는 일, 용변을 보고 뒤처리하는 일 등 자신의 성을 구별하고 위생 관념까지도 심어줄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인격적으로 만나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성에 대한 건전한 태도와 가치관은 어릴 때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체계적이면서도 눈높이에 맞게 실시돼야 할 것이다.

최현정 서울신용산초등학교 특수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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