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다. 여름이란 이미지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강렬한 태양빛만은 아니다. 작렬하는 태양아래 시원스런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그녀들. 이것이 여름의 이미지가 돼버린 것이다. 그러나 ‘여름 = 노출한 여성’이라는 등식이 자연스러운 지금에도 여름은 여성들의 계절일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그것은 노출의 기준이 오로지 남성들의 눈에 맞춰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각종 광고와 TV프로그램 그리고 잡지들은 남성들의 눈에 대상화된 여성상을 제시하면서 ‘그것만이 최상이다’라고 과거에도 현재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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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되면 여성들을 위한 스킨케어용품들의 생산은 급증한다. 아무래도 청결의 문제는 남성보다 여성에 관계된다는 인식 때문이겠지.

나는 날씨가 갑자기 더워지고 나서 지하철에서 니베아의 ‘데오도란트’ 광고를 봤다. 지하철 광고라 그런지 겨드랑이 털을 깨끗이 제거하고 자신있는 표정을 짓는 여성을 지하철에 앉아있는 남성의 시선으로 잡은 광고였다. 데오도란트는 땀 냄새 제거제다. 이것은 운동선수들이 많이 쓰는 것으로 땀이 많이 나는 부분에 뿌려주는 파우더다. 데오도란트는 여러모로 편리할 때가 많다. 하지만 항상 여성필수품은 아닌 것이다. 땀이 많이 나는 사람에게 또는 땀이 나는 것을 불쾌해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용품인 것이다.

그러나 니베아는 남성용 데오도란트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항상 데오도란트를 여성의 것인 양 광고해왔다. 언제나 폐쇄적인 공간에서 남성의 시선을 중심으로 데오도란트를 사용한 여성과 사용하지 않은 여성을 대비해서 무엇이 더 좋은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계절은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광고 속의 그녀들은 정말 깨끗하다 못해 상쾌하기까지 했다. 나는 그 광고를 보면서 항상 겨드랑이 털을 깎고 피부가 뽀송뽀송하게 유지되도록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그런 생각에 휩싸였었다. 사실 그것을 개인의 자유로 맡겨 놓기에 내 주변은 너무나 남성화돼 있고 내가 그 기준에 맞추지 않았을 때 같은 여자에게까지도 들을 질타들 그리고 그 알 수 없는 책임감은 나로 하여금 데오도란트를 구입하게 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사용할 때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것을 오직 나를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나 아닌 남성의 시선에 의해서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여름에는 노출이 심하기 마련인데 나의 보이지 않는 곳까지 남의 눈을 의식해서 청결을 유지하려니 여간 불쾌한 것이 아니다.

니베아 측에선 마케팅 전략이니 홍보 수단이니 해도 어쩔 수 없다. 어쨌든 나는 그 광고를 보면서 분노를 느꼈고 다시 한번 여성의 성적대상화에 대해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광고를 보면서 기분이 유쾌한 여성은 별로 없을 것이다. 아무리 제품의 기능성을 중요시했다고 하지만 어차피 남녀의 권력구조가 뚜렷한 이 사회에서 그 광고를 내보냈다는 것이 남성의 시선이 인정한 여성만이 ‘괜찮은’ 여성이라고 말하는 거 아닌가?

‘여자는 청결해야해’라고 말해주는 그 광고를 볼 때마다 나는 방한구석에 처박아 놓은 나의 데오도란트를 보면서 후회한다. 여름이면 땀나는 건 당연한 건데 어째서 항상 상쾌한 그녀를 닮으려고 내가 저걸 샀을까 하면서.

김경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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