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페미니즘 문학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정립하고 그 뛰어난 실천적 전범을 보였던 작가 고정희, 그는 최근 자신의 태를 묻고 뼈를 묻은 해남 땅에서 다시 부활했다. 세상의 잠을 깨우는 힘찬 언어로 민족, 민중 그리고 여성해방을 노래했던 고정희의 문인으로서, 여성운동가로서의 실천적 삶이 그의 모태인 해남 땅에서 그가 떠난지 11년 만에 처음으로 재조명됐기 때문이다.

지난 8일 가졌던 ‘고정희 시인의 11주기 추모제’와 이를 기념하는 심포지엄(고정희 시인과 해남과의 만남)은 해남 지역의 여성활동가 그룹인 ‘해남 여성의 소리’와 ‘땅끝 문학회’가 주축이 돼 치러졌다. 이는 지난 10년간 ‘또하나의 문화’ 동인 중심으로 이뤄진 그의 재조명 작업이 지역으로 널리 확산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지난 8일 ‘또하나의 문화’ 동인들과 그의 후배들인 소녀 페미니스트, 해남 땅 많은 활동가들이 하나가 된 고정희 시인의 11주기 추모 행사의 이모저모를 모아봤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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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 그날을 기억하고 추측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지난 8일 고정희 시인의 무덤 앞에 다시 모였다.

“아들 넷 낳고 얻은 딸이니 얼마나 귀한 딸이었겠어요.”

고정희 시인이 나고 자란 전남 해남군 삼산면 생가를 지키고 있는 큰 올케 박용림씨의 말이다. “아궁이 불을 지피면서도 책을 봤다”며 시인을 떠올리던 박씨의 눈가에는 어느새 물기가 가득 고여온다.

“고인을 위해서라도 오늘은 즐거운 축제로 지내야지요. ”

둘째 오빠 고광웅씨는 이제는 친숙한 '또하나의 문화' 동인들과 소녀 페미니스트 일행 앞에 일 잔을 권하며 은근히 화제를 돌린다.

그렇다. 이제 고정희 그의 기일은 그를 기억하는 사람에게나 책으로 만난 많은 후배들에게는 더 이상 슬픔으로만 존재하진 않는다. 소녀 페미니스트들에게는‘신성한 의식’으로, 해남 땅의 여성 활동가들에게는 '봇물을 틀 수 있는 힘'으로 존재하고 있다. 나아가 그는 한국문학사에 페미니즘이라는 한 획을 그었던 선구자로서 다시금 재조명되고 있는 터이다.

한국문학사에 페미니즘, 그 한 획을 그었다

시인의 방은 잘 정돈돼 있었다. 유고집과 그가 생전에 보았던 숱한 민중들의 산 역사가 기록된 빛바랜 책들로 그득한 그의 방은 밖의 현실인 사건과 안의 현실인 언어를 같은 범주에서 바라보고자 했던 그의 실존적 고민의 흔적을 발견케 한다. 그가 남기고 간 시집 <초혼제>(83년)에 수록된 문학평론가 김주연씨의 말처럼 그는“집단의 아픔이나 민족의 슬픔을 가련한 센티멘탈리즘이나 헛된 구호적 분노로 떨어뜨리지 않는 드문 재능의 시인”이었다.

시인은 하얀 나비가 돼 무덤가를 찾았다

생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가지런히 자리한 그의 무덤을 만날 수 있었다. 멀리 비옥한 해남 땅이 한눈에 내려다 보일만큼 자리도 잘 잡았다. 그를 기리고자 찾았던 많은 사람들은 차례로 시인에게 술을 따르고 추모사를 낭독했다.

“당신이 누구일까. 다시금 궁금해 집니다.

새벽에 코피를 쏟아가며 시를 썼던 '여자'란 사실밖에 모른채 지난 봄날 많은 친구들과 파티를 하고, 워크샵을 갖고, 당신을 기리는 추모제를 지냈습니다. 시를 썼던 당신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나는 떠듬떠듬 그러면서도 신나게 소녀들과 새로운 언어들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당신을 그리워하는 많은 사람들을 볼 때 그리고 그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나도 모르는 사이 어떤 곳으로 내가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곳은 바람이 말하는 맨발의 여자들이 춤추는 나라이기도 하고, 깊고 깊은 바다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곳을 알게 해 준 당신과 그런 당신을 기억하고 그리워하게 해 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길을 함께 걸어가는 소녀들이 있다는 것도 기억해 주세요.”

그를 책으로 만났던 한 소녀가 읊은 추모사다. 헌데 심성이 맑은 소녀들에게만 그의 존재가 보였던 걸까. 추모사를 낭독하는 내내 소녀 페미니스트 일행은 무덤가를 선회하는 하얀 나비를 보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와 책으로 만난 지난 1년간 소녀들은 하얀 나비의 환영에 시달려야 했다. 그래서 이 날 특별히 마련한 선물도 하얀 연이다. 소녀들은 하얀 나비가 되어 나타난 그와 함께 훨훨 날으라고 하얀 방패연을 하늘을 향해 띄워 보냈다.

김경혜 기자 musou21@womennews.co.kr

고정희 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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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희는 1948년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광주 YMCA 대학생부 간사와 크리스찬 아카데미 출판부 책임간사, 가정법률상담소 출판부장을 지내면서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자유, 사랑, 정의 실천의 정신으로 대학생 문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또 그녀는 1980년대 초부터 여자와 남자가, 그리고 아이들과 어른들이 서로 평등하고 자유롭게 어울려 사는 대안사회를 모색하는 여성주의 공동체 모임인 <또하나의 문화>에 동인으로 참가해 중추적인 역할을 해 왔다. 운동가의 강인함과 시인의 열정 및 섬세함을 동시에 갖춘 고정희 그는 훈련된 지도자의 역량으로 <여성신문> 초대 주간을 맡아 명실상부한 여성주의적 대안 언론의 초석을 튼튼히 다졌다.

그를 한국문화사, 여성문화사의 한 중요한 모범으로 기리고자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시인으로서 고정희가 이룩한 업적이다. 그는 '여성의 경험'과 '여성의 역사성' 그리고 '여성과 사회가 맺는 관계방식'을 특별한 문학적 가치로 강조하고 이론화했다. 또 그녀는 전통적인 남도 가락과 씻김굿 형식을 빌어와 민중의 고난과 그 고난 속에서도 다져지는 저항의 힘을 힘차게 노래했다. 현실사회의 개혁과 더불어 새로운 글쓰기의 혁명은 이처럼 고정희에게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 두 개의 중요한 삶의 지향점이었다. 정직하게 줄기차게 자유를 향한 이념을 불태우며 민족, 민중, 그리고 여성의 해방을 위해 노력한 고정희의 문인으로서, 여성운동가로서의 실천은 한국문학사에 드문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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