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24개 NGO단체 참여, 시립납골당 안치

빨래하다 잡혀가고/ 물질하다 잡혀가고/ 공장에 나가 일하다 잡혀가고/ 잊고싶었습니다/ 돌아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짐짝 같은 트럭에 실려 현해탄을 건너고/ 황하를 건널 때/ 원망도 사무침도 없었습니다/ 여자로 태어난 것이 죄였습니다/ 나라 잃은 스무 살 옷고름에 묻어나는 건/ 핏물자국뿐이었습니다.

- 박영희 시인의 ‘어머니, 당신의 이름을 부르기까지’ 중에서

또 한명의 위안부 할머니가 세상을 등졌다.

일본군위안부 시절의 후유증으로 오랫동안 투병생활을 해오던 서봉임 할머니가 1일 위독한 상태로 곽병원에 입원 한 후 지난 5일 운명, 7일 대구 곽병원 영안실에서 영결식이 치러졌다.

1922년 경남 거창에서 4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서 할머니는 16살 꽃다운 나이에 베트남으로 끌려갔다. 아야꼬로 불리며 2년 동안 사이공에서 위안부 생활을 했던 서할머니는 다시 자바의 위안소로 끌려갔고 해방을 맞이하며 귀국했다. 그러나 90년 중풍으로 쓰러진 후 만성신부전증까지 겹쳐 매일 저녁 복막투석을 하며 하루하루 힘든 날들을 보내다가 생을 마쳤다.

‘정신대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대표 곽동협)이 주관한 할머니의 장례식은 장례준비위원장 김민남(경북대 사범대 교수, 대구참여연대) 대표를 비롯해 대구·경북 24개 NGO단체가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으며 서봉임 할머니의 시신는 화장돼 대구시립 납골당에 안치됐다.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은 10여년이 지나도록 요원하기만 한데 고령인 할머니들의 잇단 운명 소식은 남아있는 자들에게 안타까움을 더해 주기만 한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한을 풀기 위해서는 일본 정부의 진심어린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기 위한 길은 우리 모두의 끊임없는 관심과 지속적인 실천 뿐임을 서봉임 할머니의 장례식은 다시 한번 일깨워줬다.

장례식 참석자들은 서봉임 할머니가 한많은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훌훌 털어 버리고 이제는 편안히 쉬시길 기원 드리며 모두가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경북 권은주 주재기자 ejskw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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