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일/ 한국 가정법률 상담소 상담위원

“코흘리개 아들을 어엿한 청년으로 키워낸 자긍심과 군대 보낼 때의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도 잠시, 싸늘하게 돌아온 아들의 시신을 부둥켜 안고 울부짖던 그 절망감 또한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환하게 웃던 아들의 모습이 생생한데 벌써 20여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들 잃은 슬픔을 가슴에 묻고 사는 어머니의 한맺힌 회한이다.

기나긴 세월이 지난 지금, 어머니는 또다시 눈물을 흘려야 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어머니라는 이유로 연금수령 순위에서 밀린 것이다. 연금을 받아 술값으로 탕진하는 남편을 보다 못해 연금수급권자 변경신청을 했지만 순직한 아들을 주로 부양 또는 양육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이를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행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 13조 제 2항에는 ‘연금을 받을 유족 중 동순위가 2인 이상인 경우에는 나이 많은 자가 나이 적은 자에 우선한다. 다만 부모의 경우에는 국가유공자를 주로 부양 또는 양육한 자가 우선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자녀를 키우고 보살피는 부모의 정성과 사랑이 순위를 매길 수 있는 성질의 것인지? 또 무엇을 기준으로 어떤 방법으로 우선순위를 정한다는 것인지?

부모가 별거 또는 이혼 및 그 밖의 사정으로 헤어져 사는 경우라면 자녀를 주로 부양·양육한 부 또는 모를 정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부모와 자녀가 함께 살면서 자녀를 보호·양육하고 교육했을 경우 어느 누가 더 부양하고 누가 주로 양육했는가를 따지고 순위를 정하는 것이 공평한 것인가?

이제까지 우리의 법과 제도, 관행은 아버지 우선이었다. 그런 가부장적 고정관념에 의해 아버지는 공적 역할을 담당하고 어머니는 사적 영역을 담당함으로써 대외적인 가족의 대표자 또는 부양자는 항상 아버지였고 어머니의 기여와 가치는 공적으로 평가받지 못한채 소외당하고 차별받았다.

이같은 불평등한 평가와 왜곡된 관행은 결국 호주제에서 연유된다. 법조항 곳곳에 걸쳐있는 가부장적 시각과 남성주의 법개념을 없애기 위해서 호주제의 폐지는 그만큼 절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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